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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Start] "얼쑤~" 工團 아이들에 희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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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 황선업씨가 아이들에게 장구 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대전=김방현 기자]

"덩더 덩더쿵, 얼쑤~."

지난 11일 오후 5시쯤 대전시 대화동 대전1.2공단 내 공부방 '씨알(민중이라는 뜻) 학교'. 장구 가락과 앳된 목소리가 어우러져 신명나는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18년째 씨알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황선업(46.여)씨가 초등생 8명에게 풍물놀이를 가르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이 공부방에는 이들을 포함해 매일 52명의 아이들이 찾아오고 있다. 부모가 기초생활 수급자이거나 저소득층 결손가정 자녀들이다.

초등생 35명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달려와 오후 6시까지 글쓰기.인터넷.풍물놀이 등을 배우거나 놀이를 즐기다 저녁을 먹은 뒤 집으로 돌아간다.

이들이 돌아갈 무렵 찾아오는 중학생 17명은 함께 저녁식사를 한 뒤 오후 9시까지 국어.영어 등 주로 교과목 과외지도를 받는다.

이들을 지도하는 교사 20명은 노동부 등에서 약간의 급료를 받는 6명 외에는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황씨도 이들과 함께 직접 아이들을 가르친다. 아이들의 부모나 학교 담임교사를 찾아가 교육 상담을 하는 것도 황씨의 몫이다.

지하 1층.지상 3층 연면적 220평의 이 공부방 건물에는 단체식당을 비롯, 피아노.독서.인터넷 교실 등 다양한 학습 공간이 갖춰져 있다. 매월 운영비 600여만원은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이곳을 찾는 노경숙(12.가명)양은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어 집보다 더 좋다"고 말했다.

씨알학교가 문을 연 것은 1987년 5월. 황씨가 연세대 운동권 출신의 남편(김규복.53.빈들교회 목사)과 결혼하면서 "가난한 사람과 함께하자"고 다짐한 지 3년여 만이다.

월세 10만원짜리 사글셋방(10평)에서 동네 아이 20명에게 학습지도를 시작했지만 곧 벽에 부닥쳤다. 목욕.이발.진료 등 복지혜택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학습지도조차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한 것이다. 아이들이 이런 문제로 툭하면 결석을 하고 의기소침해졌기 때문이다.

황씨는 "함께 돕자"며 끈질기게 이웃 주민 설득에 나섰다. 그 결과 90년부터는 인근 치과.한의원.미장원.목욕탕.아이스크림가게 등 10여개 업소가 동참했다. 이들 업소는 아이들에게 틈틈이 무료로 진료.이발.목욕 등을 해준다.

97년에는 연면적 220평인 현재의 공부방도 마련돼 교과목 지도뿐 아니라 인터넷.피아노 등 특활지도도 할 수 있게 됐다. 자신의 통장을 모두 털어 마련한 200만원과 독지가의 후원금 2억여원을 합쳐 90년부터 조금씩 지어온 것이다.

황씨는 외환위기가 닥친 98년부터 공부방에 찾아오지 않는 초.중생 40여명에게 가정으로 저녁을 배달해주는 무료급식도 해오고 있다.

황씨는 "날로 늘어나는 가난에 갇힌 아이들을 민간이 모두 맡아 보살피기엔 너무 벅차다"며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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