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투자, 단순히 생산원가 줄이던 시절 끝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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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동시에 기회다. 세계 경제위기 상황에서 눈앞의 경제 살리기도 중요하지만 중국은 이번 위기 상황을 중장기 산업 구조조정의 기회로도 활용하고 있다.”

완지페이(萬季飛·61·사진)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 회장 겸 중국국제상회 회장은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세계 3대 무역대국으로 도약한 중국 ‘무역계의 대부’이자 대표적인 개혁·개방파 인물이다. 동시에 덩샤오핑(鄧小平)을 도와 중국의 농촌 개혁을 이끌어낸 완리(萬里·93) 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국회의장에 해당)의 큰아들이다.

그는 한국과의 무역 확대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돼 지난달 초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 이후 한국 정부의 훈장을 받은 최초의 중국인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글로벌 경제위기로 한·중 교역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목표(2012년에 무역액 2000억 달러 달성)를 낙관할 수 있겠나.

“2007년 양국 무역액은 1599억 달러를 기록했다. 중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무역액(1623억 달러)이 이미 2007년 수준을 넘어섰다. 양국 무역 구조는 상호 보완성이 강하기 때문에 경제위기 와중에도 앞으로 확대될 여지가 크다.”

-무역 확대를 위해 중국 측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을 조기에 체결하자는 목소리가 많았는데.

“균형 잡히고 실질적이며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투자 여건 마련을 위해 최대한 조기에 FTA를 체결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상호 투자협력 수준을 높이고 무역 거래의 편의를 보장해줘야 한다.”

-중국 정부의 새로운 경제정책 환경에서 한국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

“일부 한국 기업의 비정상적 철수 문제는 개별적인 사안이지만 이런 유형의 사건은 한국 기업들에 경종을 울렸다고 본다. 중국의 시장 규모는 방대하지만 동시에 경쟁은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중국에 투자하려는 기업은 단순히 생산원가를 줄이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사 제품이 중국 시장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앞으로 전망이 어떤지를 사전에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국 경제가 세계 금융위기라는 파도를 넘을 수 있나.

“글로벌 위기로 중국 제품의 수출이 급격히 감소했다. 하지만 개혁·개방 30년간 중국 경제는 외풍에 견딜 수 있을 만큼 리스크 관리 능력이 크게 강화됐다. 이번 위기가 중국에 끼칠 영향은 제한적이고 충분히 관리·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어떤 대책이 있나.

“중국 정부는 안정적이고 비교적 빠른 경제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을 최대 임무로 정했다. 4조 위안(약 800조원)의 내수 확대 정책 외에도 10대 산업 진흥과 구조조정 등 일련의 ‘패키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내수 확대, 산업 진흥, 과기 육성 등 세 가지를 결합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중국 정부는 어떤 정책철학을 갖고 이번 위기에 대처하나.

“이번 위기를 계기로 주요 산업을 지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구조조정도 병행하고 있다. 눈앞에 발생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면서도, 관련 산업의 장기적 발전을 함께 중시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경제위기는 중국 경제와 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절호의 기회다. 중국 정부는 국가의 중장기 과학기술 발전 계획을 비롯해 주요 과학기술 육성 프로젝트를 경제발전과 긴밀히 결합시키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중국이 단기간에 내수 확대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나.

“중국은 (9억 명의) 광대한 농촌 시장이 있고, 중부와 서부도 개발 여지가 크다. 기업의 진출 공간이 여전히 넓다.”

-미국에선 “미국 제품을 사고(Buy American), 미국인을 고용하자(Hire American)”는 보호무역주의가 고개를 드는데.

“보호무역주의에 대해 지난해 12월 중·한·일 3국 정상이 일본 후쿠오카에서 만나 정확한 답변을 이미 제시했다. 지금의 금융 불안이 세계경제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역내 무역과 투자를 더 편리하게 하고, 지역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완지페이=전인대 상무위원장과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부친의 뒤를 이어 중국의 개혁·개방파로 활약하고 있다. 95년 국무원 경제특구 판공실 부주임을 시작으로,국무원 경제체제개혁 판공실 부주임으로도 일하며 개혁·개방 정책 추진에 기여했다. 2000년 중국국제무역촉진회와 중국국제상회 부회장으로 무역 분야에 본격 투신했다. 특히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2001년 11월)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 2003년 5월 현직(장관급)에 올라 6년째 중국의 무역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이자 2010년 상하이(上海) 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 부주임으로도 활동 중이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산둥(山東)성 둥핑(東平) 출신으로 베이징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무역협회장을 지낸 김재철 동원산업 회장, 이희범 무역협회장 등 한국에도 지인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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