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파키스탄 핵 개발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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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일본 대기업들이 1980년대 핵 개발을 위한 특수자재를 파키스탄에 대량 수출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고 교도(共同)통신이 15일 보도했다.

통신은 70년대 이후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을 주도한 ‘핵 개발의 아버지’ 칸(72) 박사의 증언을 인용, “80년대 일본 대기업들이 링매그넷이라고 불리는 특수자석을 최소 6000여 개 파키스탄에 수출했으며, 이는 원폭 원료인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 원심분리기의 회전 부분을 지탱하는 부품에 사용됐다”고 밝혔다.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폭국인 일본의 기업체들이 파키스탄의 핵 개발에 협력, 핵무기 개발을 위한 자재를 대량 공급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칸 박사는 또 “핵 관련 연구에 사용하는 전자현미경도 일본의 또 다른 업체가 파키스탄에 수출했다”며 “당시 일본은 매우 중요한 수입원이었다”고 말했다. 교도통신은 그러나 당시 파키스탄에 이들 물자를 수출한 기업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일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원심분리기의 전용부품은 당시 수출 규제 대상이었다. 업체 측은 “칸 박사 측으로부터 특수자석을 어떤 용도에 쓸 것인지 들은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부 거래내용이 법령 위반에 해당할 가능성도 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칸 박사는 80년대 말 ‘핵 암시장’을 구축, 북한과 이란에 원심분리기를 제공한 인물이다. 파키스탄은 98년 5월 핵실험에 성공, 이슬람권 최초의 핵보유국이 됐고 칸 박사는 파키스탄의 영웅이 됐다. 2004년 2월 북한과 이란·리비아에 핵 관련 기자재와 기술을 전달했다고 고백한 칸은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다 이달 초 법원 판결로 자유의 몸이 됐다. 그러나 그는 외출하려면 정부에 사전 보고를 해야 하고, 해외 출국 시에도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그를 위험인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칸 박사와 관련, 3개 회사에 대해 미국 정부 및 기업과의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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