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가개혁일본은왜가능한가]中. 경제개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어! 이 사람도 그만 두었나. " 도쿄 (東京) 시내 택배 (宅配) 업체들은 요즘 금융기관에 소포배달을 나갔다가 헛걸음치기 일쑤다.

수신자의 이름과 직책이 틀린 경우도 흔하다.

개혁에 따른 금융업계의 개편바람은 '임원 사계보 (四季報.임원명단과 연락처를 담은 책)' 의 품절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대량감원과 빈번한 인사이동으로 연락처를 확인하기 위해 이 책을 찾는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안정된 자리에다 연공서열 중심의 일본 금융기관에서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지난달 30일 회갑을 맞은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리는 "지금 나는 지난 60년을 되돌아볼 여유가 없다" 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지난해 11월11일 금융개혁선언 이후 그는 강행군을 계속해왔다.

일본의 주요 경제법안들은 대폭 손질됐고 6월에는 재정개혁에 대한 청사진도 마련됐다.

그러나 남아 있는 과제는 더많다.

내년 4월부터 슈퍼마켓과 편의점에서 조차 외환거래가 가능해지고 6월에는 금융감독청이 발족한다.

법적정비가 끝난 지주회사 부활과 일본은행 독립문제도 서둘러 결론을 내야할 참이다.

올해 일본경제백서는 비제조업 분야의 과잉고용 문제가 심각하다며 "은행에서 21%, 소매유통업계는 31%의 인원삭감이 불가피하다" 고 지적했다.

일본 경제개혁의 골자는 한마디로 경쟁과 시장원리의 도입이다.

일본식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시장원리가 작동할 수 있도록 모든 제도를 국제적 기준에 맞춰 고쳐가는 것이다.

이에따라 금융기관끼리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무차입 경영원칙을 고수하는 항공권 할인업체 HIS의 사장실에는 요즘 "제발 우리돈을 빌려가달라" 는 금융업체 여신담당자들로 북적대고 있다.

개혁의 와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장전망이 밝은 기업들을 발굴, 수익성을 높이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 운수성이 검토중인 '2명 승선제' 는 선장.기관장만 일본인이면 국적선으로 인정하겠다는 제도다.

지난 10년동안 고임금을 피해 일본선박의 80%가 국적을 옮김에 따라 해운산업 경쟁력을 위해서는 도입이 불가피한 조치다.

물론 노조는 외국선원 유입과 고용불안을 이유로 여전히 결사반대다.

경제개혁으로 경쟁이 격화되는 것을 원치않는 통신업계.항공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에대해 가지야마 세이로쿠 (梶山靜六) 관방장관은 "개혁은 열기가 고조될때 밀어붙여야 한다" 고 설득에 나섰다.

특히 미국경제가 고공행진을 하는 지금이 외부의 간섭 없이 경제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적기인만큼 시기를 놓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기획청도 "국내경기가 완만히 회복되고 엔화가 약세인 지금이 경제개혁의 호기" 라고 지적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