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잡지에서 나를 보고 '살아 있는 성인' 이라고 했다는군요. 누군가 나를 통해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요. 나는 모든 사람, 특히 고통받는 사람 안에서 하느님을 봅니다.
" 자신을 성인이라 일컫는 세인들에 대한 테레사 수녀 (87) 의 응답이다.
마더 테레사.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빈자 (貧者) 의 어머니' '인도의 등불' '캘커타의 성녀' '사랑의 천사' 등등. 하지만 이런 칭송에 그는 무심할 뿐이다.
테레사 수녀의 육성 모음집 '말씀' 이 나왔다 (디자인하우스刊) .전에도 심심찮게 선보인 전기.설교집.영화.비디오등과 달리 그의 입을 통해 그간의 철학과 사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이 특징. 2백쪽이 채 안되는 '작은' 책이지만 아무런 군더더기 없이 그의 '큰' 마음을 있는 그대로 펼쳐보인다.
엮은이는 스페인 언론인이자 문학편집자로 있는 호세 루이스 곤살레스 - 발라도. 지난 69년부터 테레사 수녀와 친교를 맺어왔다.
그리고 그를 옆에서 지켜보며 들은 이야기들을 책 속에 모았다.
책은 관용.사랑.덕.미소.돈.고통등 15가지를 소재로 이념과 종교, 그리고 국경을 초월해 '참사랑' 을 실천했던 테레사 수녀의 정수 (精粹) 를 보여준다.
개인.가정부터 국가.세계까지 부박 (浮薄) 한 세상 속에서 과연 어떤 것이 바람직한 삶인가에 대해 간결하고도 확신에 찬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복잡한 비유나 현란한 수사 (修辭) 는 끼어들 틈이 없다.
사랑의 기본은 관심과 애정. 동정과 겸손은 '껍데기' 에 불과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다른 이들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그들의 존엄성이 존중받는 것입니다.
" 쓰다 남은 물건이나 유행 지난 옷을 주는 것은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필요없습니다.
" "싫증내지 말고 주십시오. 상처를 받을 때까지, 고통을 느낄 때까지 주십시오. " 가난 또한 물질의 차원이 아니다.
오히려 정신의 문제일 수 있다.
"가장 큰 고통은 혼자라고, 자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때문에 테레사 수녀는 자기도 굶주리면서도 건네 받은 음식을 옆집 이슬람인과 나눠 먹는 힌두인에게서 '행복' 의 참뜻을 발견한다.
그리고 누군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노인들의 시선이 오직 문쪽에 고정된 영국의 한 부유한 양로원에서 고독의 실체를 발견한다.
이같은 일화 (逸話) 를 곁들이며 테레사 수녀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언어로 삶의 '본체' 를 파고들고 있다.
그는 특히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을 걱정한다.
"우리는 너무나 바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미소 지을 시간조차 없는가 봅니다.
" "우리 자신에 대해 노심초사한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줄 수 없을 것입니다.
" 서구문명 비판도 간간이 나온다.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은 쌀 한줌을 받으면 기뻐하고 만족합니다.
반면 유럽의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 때문에 절망합니다.
" 그리고 인도의 성자 간디가 예수님을 알고 상당한 매력을 느꼈으나 기독교인을 만나고는 실망했다는 예화를 들며 화석화 (化石化) 한 종교를 꼬집는가 하면, 국민의 고통에 대한 배려없이 정쟁 (政爭)에만 매달리는 위정자들에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고 충고한다.
본인의 땀이 안 들어간 일에는 물 한잔도 받아 마시지 않고, 지난 79년 노벨상 수상 또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부분에서 특유의 소명의식이 느껴진다.
"만일 달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면 물론 그곳에도 갈 것입니다.
" 푹푹 찌는 폭염, 어수선한 정치.경제 상황에 지친 우리들을 다잡아주는 청량한 말들로 가득하다.
박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