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한 생애를 말갛게 비워내는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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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호 13면

“민물에 담가놓은 모시조개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몇 번을 소리쳐 부르자 당신은 간신히 한쪽 눈을 떠 보였다 눈꺼풀 사이 짠 물빛이 돌았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나를 몸속에 새겨넣겠다는 듯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르렁, 그르렁 입가로 한 움큼의 모래가 토해졌다 간조선을 지나 들어가는 당신의 흐린 물빛을 따라 축축한 한 생애가 패각 안쪽에 헐겁게 담겨 있었다”(‘해감’ 중)

시집 『공손한 손』, 고영민 지음, 창비, 7000원

임종의 순간. 마지막을 지키며 “더 깊은 물밑까지 따라들어”가는 아들에게 아비는 “이제 오지 마라! 따라오지 말라고 이놈아!” 불호령을 내리고 홀로 삼도천(三途川)을 건넌다. 조개가 검은 모랫물을 토해내듯, 죽음이란 그렇게 한 생애를 말갛게 비워내고 가는 것이다. ‘해감’은 고영민(41.사진) 시인이 4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시집 『공손한 손』(창비)에서 가장 여운이 남는 시편이다. 시집은 가족 간에 정이 넘치던 옛 시절의 향수로 가득하다.

“한나절 새끼 낳을 곳을 찾아 울어대던/고양이가 잠잠하다/잠잠하다//(…)오늘밤, 이 늙은 누대의 집은 구들 속/새끼를 밴 채 진통이 심하겠다/불 지피지 마라/불 지피지 마라”(‘아랫목’ 중)

고양이는 구들장 아래 새끼를 치고, 사람 가족은 냉골이 된 구들장 위에 자리를 깔고 눕는다. 짐승까지도 크게는 한 가족의 테두리에서 포용했던 시절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 환갑을 넘긴 맏형이 소리를 치면 반응하는 바바리맨 인형을 어머니께 선물한다.

“어머니가 갑자기 바바리맨을 향해 영민아, 하고 소리를 친다. 으하하하! 웃음소리와 함께 바바리 자락을 열어젖히고 심벌을 어머니 앞에 흔들어댄다.(…)어머니는 과수원을 하다 사고로 죽은 넷째 형도 불러세우고 그 죽은 아들 역시 어머니 앞에서 으하하하! 거대한 심벌을 흔들어댄다.”(‘효자’ 중)

가슴 찌르르한 사연을 전하면서도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시인은 원고를 엮는 동안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울음소리가 큰 여식을 하나 더 얻었다”(‘시인의 말’)고 한다. 아버지도, 대가족의 옛 정취도 사라졌지만 부정(父情)은 핏줄을 타고 이어진다.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딸아이에게 시인은 밥을 “씹지 말고 삼켜라”고 말한다. 오래 전 아버지가 그랬듯이.

“아버지는 직접 밥 한 숟가락을 떠 꿀꺽, 씹지도 않고 삼켜 보였다 그리고 아, 입을 벌려 당신의 입속을 나에게 보여주었다”(‘당신의 입속’ 중)
아랫목 이불 밑에 묻어둔 밥공기를 받아 든 듯, 배부르고 따뜻해지는 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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