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 전사’로 바뀐 김문수·이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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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민중당이 있었다. 1년여 존재했는데 기층 민중을 대변한다는 게 모토였다. 이념적 잣대론 왼쪽이었다. 김문수 경기도 지사와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이 민중당 출신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근래 발언이 이렇다.

“김연아·박지성 선수 같은 사람을 퇴장시켜 놓고 경제 전쟁에 나선다는 게 안타깝다.”

10일 라디오에 출연한 김 지사가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을 ‘우리나라 대표선수’에 비유하며 한 발언이었다. 삼성이 법정관리 중인 쌍용차를 맡는 게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이 전 회장의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그런 거를 할 처지가 안 된다는 (게 삼성의) 답변인데 이 전 회장은 우리나라 대표선수”라며 “대표선수를 뛰게 하면 국민도 기분 좋고 우리 경제도 좋고, 소위 경기력이 향상돼 일등 하면 좋은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연아·박지성 선수가 재판을 받는 건 아니지 않느냐”란 지적에는 이렇게 반박했다. “법도 국민 정서도 과연 얼마만큼이나 우리 기업에 우호적이냐. 우리나라에선 기업, 특히 10대 기업 중 재판을 안 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래선 기업이 투자를 더 하고, 외국 기업이 과연 우리나라에 와서 투자를 하겠느냐. 수사하고 재판할 수 있는 걸 온 세계에 난리를 떨어 가며 특검까지 가는 건 좀 과도하다는 느낌이다.”

베이징에 체류 중인 이 전 의원은 기업인을 향해 ‘애국자’란 표현을 썼다. 그는 9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 텍사스의 삼성전자, 앨라배마의 현대자동차, 남미의 LG전자, 페루의 SK액화석유공장을 거론하며 “외국에서 돈 버는 기업이 애국자”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발언을 두고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정치권 인사가 많다. 실제 90년대 중반까지 이들의 삶은 ‘반기업’에 가까웠다.

김 지사는 70년대부터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85년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내세운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의 결성을 주도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당시 정부는 서노련을 좌경단체로 규정했었다.

이 전 의원도 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대표적 민주화 투사였다. 오죽하면 김 지사가 94년, 이 전 의원이 96년 각각 한나라당의 전신 격인 민자당과 신한국당에 입당할 당시 색깔론이 제기될 정도였다. “과연 보수 정당에 맞는 인물이냐”는 반발이었다.

김 지사 측 인사는 “한나라당 입당했을 때 이미 바뀌었고, 이후 도지사까지 하면서 더 생각이 분명해졌다”고 전했다. 김 지사 스스로 “과거엔 급진 민중주의자였고 지금은 자유민주주의자”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이 전 의원의 변화는 비교적 근래인 듯하다. 한 측근은 “이번에 외국에 나가 보니 정말 기업 하는 사람이 애국하는 사람이란 걸 느꼈다는 게 이 전 의원의 설명”이라고 전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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