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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명 줄여야 하지만 … 단 한명도 감원 않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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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최창대 사장이 12일 부산시 구평동 YK스틸 제1압연공장에서 회사 현황과 일자리 나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12일 오전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 YK스틸 제1압연공장. 시뻘건 쇳덩이가 뿜어내는 열기로 얼굴이 달아오르는 가운데 최창대(55) 사장이 옆에 있던 박재권(55) 직장(기능직 최고 자리)을 가리키며 “30년 전 함께 입사해 노동조합 활동도 같이한 친구”라며 씩 웃었다. 공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직원들에게 “마누라는 잘 있나. (베트남 출신 부인이) 한국말은 좀 늘었나”라며 스스럼없이 말을 건넸다.

최 사장은 지난해 3월 노조위원장 출신으로서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CEO로 보낸 1년의 소감을 “기업이 이익을 내면서 일자리를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노조위원장 때는 회사 측에 무조건 고용을 보장하라고 외쳤지만 지금은 그렇게 못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CEO의 유전자’와 ‘노조위원장의 유전자’를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 그런지 ‘일·만·나(일자리 만들기 나누기)’에 대한 고민이 훨씬 더 많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10월부터 불어닥친 세계적 경기 침체로 철강 수요가 급격히 줄어 감원 등 구조조정 요인이 생긴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주주와 근로자 양측을 어떻게 만족시키면서 위기를 극복할 것인지를 놓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먼저 560여 명 직원 중 단 한 명도 감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감산을 했다.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총 6일간 공장 가동을 중단해 생산량을 줄이고 직원을 쉬게 했다. YK스틸은 지난해 870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올해는 7300억원으로 목표를 다소 줄여 잡았다. 최 사장은 “재무상 매출 감소분을 인력으로 환산해 보면 현재 직원 중 40~50명을 구조조정해야 한다”며 “그러나 감산 등으로 이를 대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잘돼야 종업원이 잘될까. 종업원이 잘돼야 회사가 잘될까.”

최 사장은 이런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종업원들이 맘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생산성이 오른다”고 말했다. 종업원이 잘돼야 회사가 잘된다는 쪽에 무게를 둔 말이다.

이런 생각으로 그는 지난해 경영환경이 어렵지만 정년을 57세에서 59세로 늘렸다. 57세를 정점으로 58세는 임금을 10%, 59세엔 20% 줄였다. 직원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이다.

정은섭 총무노무팀장은 “생산성 향상을 계량화할 수 없지만 ‘사장님이 내 편이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YK스틸은 지난해 45억원의 원가절감 목표를 1억원 초과 달성했다.

정 팀장은 “과거에는 목표 대비 70% 수준으로 항상 미달됐는데 지난해는 처음으로 초과 달성했다.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최 사장은 지난해 말 직원들에게 특별성과급도 줬다.

“힘들수록 더 힘내야 한다는 의미에서 준 겁니다.”

최 사장이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대주주인 일본 야마토공업의 인간 존중 경영방침도 한몫했다. YK스틸 지분 100%를 가진 야마토공업은 배당을 한 푼도 가져가지 않았다. 어려울 때일수록 직원들의 사기를 먼저 살려줘야 한다는 본사의 철학 때문에 가능했다.


최 사장은 1979년 2월 금호산업 부산공장에 기능직 사원으로 입사했다. 금호산업은 84년 한보철강 부산제강소로 바뀌었다. 그는 작업반장 때인 95년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그런데 97년 1월 회사가 부도났다. 2002년 12월 야마토공업에 인수될 때까지 법정관리 상태였다. 그는 인수자를 찾을 때 노조위원장 자격으로 법원에 가 “남의 돈을 빌려 회사를 인수하는 사람 말고 자기 돈으로 사서 끝까지 잘 키울 사람을 찾아 달라”고 강조했다. 법원도 그의 주장에 동감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일본 업체지만 한보철강의 인수 적격자로 법원이 결정했다. 당시 야마토가 인수액으로 1410억원을 써냈지만 그보다 더 많이 쓴 한국 업체도 많았다고 한다. 야마토공업의 이노우에 히로유키(65) 사장은 회사 인수 뒤 최 위원장을 전무로 임명했다. 이후 사내의 신망과 회사를 살리려는 노력을 높이 평가해 CEO로 임명했다.

최 사장은 “처음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노동운동을 하던 선후배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 첫 직장이고 평생을 보낸 곳이 잘되도록 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열심해 배우며 일했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노조위원장과 CEO는 하는 일이 다르지만 ‘좋은 회사, 일하고 싶은 회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선 생각이 같다”고 강조했다.”

부산=염태정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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