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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평양갔다 서울온 레이니 前 주한미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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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 사정이 가장 궁금한 아주 민감한 시기에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駐韓) 미대사, 샘 넌 전 미상원 군사위원장, 재미동포 변호사 김석한 (金碩漢.48) 씨가 3일동안 평양방문을 마치고 서울에 왔다.

그들은 기자회견도 갖고 정부 당국자들을 방문해 평양에서 북한 당국자들과 가진 대화내용을 전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모든 것을 밝히지 않고 있다.

민감한 부분은 밝히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결같이 한국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를 꺼렸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23일 오전과 오후에 金변호사와 레이니 전대사를 단독으로 만나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4일자에 金변호사와의 회견을 실은데 이어 오늘은 레이니 전대사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싣는다.

편집자

김영희 = 평양방문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레이니 = 4주일 내지 6주일 전에 북한 정부가 우리를 초청한데서 시작됐어요. 김 = 미국 정부도 관여했습니까. 레이니 = 우리가 북한과 방문시기를 의논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우리에게 북한 사정과 미국의 북한정책, 그리고 한국의 입장등에 관해 브리핑 해주고 한국 정부에 우리의 평양방문계획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프리핑에는 한국 정부의 입장이 포함됐어요. 우리는 한.미관계를 해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22일 우리는 백악관에 전화로 설명한 것과 같은 내용의 설명을 한국 정부에 한겁니다.

김 = 평양에서 주로 무엇을 논의했습니까. 레이니 = 중요한 세가지를 들 수 있어요. 첫째는 9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과 북한이 서명한 핵합의의 이행을 촉구한 것이고, 둘째는 4자회담에 참석하는 것이 북한에 얼마나 이득이 되는가를 설명한 것이고, 셋째는 미국은 한국을 1백% 지지한다는 것과 북한이 한.미관계에 관해 오산하지 않도록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북한의 오산과 관련해 우리는 미국이 한국을 지원할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음을 강조했어요. 김 = 북한측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레이니 = 그들은 미국이 제네바 합의에서 약속한 대 (對) 북한 경제제재의 완화를 이행하지 않고 북한을 지금도 적성국가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는데 대해 좌절감을 토로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이 북한을 질식시키려고 경제제재도 안풀고 적성국 리스트에서 제외하지도 않는다고 말했어요. 북한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한국의 적대적인 자세가 아니라 미국의 적대적인 자세라는 겁니다.

그들은 미국이 오늘날 그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 - 파탄에 이른 경제와 빈곤 - 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김 = 북한이 레이니대사 일행을 초청한 것은 단순히 설교나 듣자고 한 것은 아닐텐데요. 레이니 = 그들은 경제제재에 관한 그들의 답답한 입장을 설명하고 싶었던 것같아요. 김 = 북한 사정은 듣던 것 보다 나빴습니까. 레이니 = 우리는 일본에서 군용기를 타고 일단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북상했다가 북한 상공을 날아 평양까지 종단 (縱斷) 했습니다.

날씨가 맑아 지상을 내려다 볼 수 있었는데 산들은 황폐해 나무가 없고 삼각주와 계곡은 뻘로 덮여 있었습니다.

북한을 떠날 때는 일단 동해로 나왔다가 강릉과 원주 상공을 날아 서울에 왔는데 한국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북한과 비교해 에덴동산 같았습니다.

평양도 황량했고 거리에서 보는 사람들은 모두 기운이 없었어요. 김 = 북한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레이니 = 우리가 만난 북한 지도자들은 이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북한 주민들의 의지가 강하다는걸 거듭 강조했습니다.

분명히 그런 의지를 느꼈습니다.

우리는 중국도 한때 심각한 기아를 경험했지만 개혁으로 그걸 해결해 지금은 식량을 자족하고 한때는 남아돌기도 했다고 설명했어요. 개혁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김 = 이번에 북한 사람들과 핫라인 또는 대화채널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접근이 있었다고 보도됐습니다.

정확한 내용이 뭡니까. 레이니 = 우선 미군과 북한군간의 핫라인 같은게 아니라는걸 분명히 합니다.

휴전선 일대는 항상 위험을 안고 있어요. 그런데 북한의 일방적인 탈퇴로 군사정전위원회 (MAC)가 기능을 잃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름은 무엇이라고 합의를 하던 비상사태가 일어났을때 서로 연락하고 만나서 대화를 하는 어떤 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조직안에 직통전화가 있을 수 있으니까 핫라인 보다 넓고 높은 개념입니다.

실제로 핫라인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았어요. 김 = 연락사무소 설치는 아직 멀었습니까. 레이니 = 북한에 달러가 없어 아직은 어렵다는 겁니다.

김 = 북한은 4자회담과 관련해 식량 1백만을 9월까지 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면서요. 4자회담 참석의 전제조건인가요. 레이니 = 분명히 조건은 아니고 그만한 식량이 9월까지 필요하니 도와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북한이 4자회담 참석을 주저하는 이유에 대한 강석주 (姜錫柱) 의 설명이 재미있어요. 북한의 경제사정이 어려운 지금 그런 회담에 나가면 우선은 북한을 지원하는 문제가 논의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한은 대등한 입장에서 회의에 참석할 수 없고, 한국과 미국은 식량지원을 빌미로 북한을 몰아붙일 것이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김 = 김정일 (金正日) 이 북한을 장악하고 있는것 같았습니까. 레이니 = 북한 사람들의 발언, 김정일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같은 것을 봐서 확실합니다.

김 = 신뢰구축을 논의했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겁니까. 레이니 = 대화를 시작하자는 거지요. 그러고는 4자회담의 진전에 따라 휴전선 일대의 병력을 후진배치하고 결국에 가서는 서로 병력을 줄일 수 있는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북한의 경제가 국방비 부담을 덜게 될 것이라고 했더니 이찬복중장이 불평 한마디를 했어요. 북한 군인들은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있는데 한국과 미국 군인들은 북한을 상대로 하는 전쟁훈련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김 = 레이니대사 일행을 초청해 놓고 회담상대를 외교부 부부장이 한건 좀 앞뒤가 안맞는것 아닙니까. 레이니 = 그렇지가 않아요. 강석주는 분명히 김정일과 직접 연락을 취하면서 우리와 만나고 있었고 그는 외교정책에서 제일의 실세입니다.

직위를 가지고 판단할게 못됩니다.

94년 평양에서 김일성 (金日成) 을 만나고 온 지미 카터 전대통령도 내게 강석주가 김일성에게 굽실거리지 않고 대등하게 얘기하는 유일한 사람이고 김영남 (金永南) 외교부장같은 사람도 참석한 회의석상에서 김일성이 자주 강석주에게 어떤 문제에 관해 묻더라고 증언했어요. 김 = 또 북한에 가게 됩니까. 레이니 = 아이고, 한번으로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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