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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창작애니 주류국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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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경쟁부문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수상은 예상도 안 했습니다.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마리 이야기'때만 해도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두번째 수상인 만큼 한국을 보는 시각이 확실히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화선을 통해 들려오는 성백엽 감독의 목소리는 늦도록 축하자리를 함께하고 있는 한국 관계자들의 웃음소리에 이내 묻혀버렸다. 2002년의 '마리 이야기'에 이은 이번 '오세암'의 안시 페스티벌 대상 수상은 한국이 세계 애니메이션 지형도에서 확실한 자리를 굳히는 쾌거로 평가할 만하다.

프랑스 남부 도시 안시에서 1960년 당초 격년제(현재는 매년 개최)로 시작된 이 페스티벌은 '애니메이션의 칸 영화제'로 불릴 만큼 세계 최고의 권위를 쌓아왔다.

*** 세계가 한국적 정서 공감

그동안 안시의 수상작들은 '나무를 심는 사람'(87년.캐나다), '붉은 돼지'(93년.일본), '키리쿠와 마녀'(99년.프랑스)등 한결같이 세계 애니메이션계를 선도해온 나라의 작품들이다.

세종대 한창완(만화애니메이션학과)교수는 "이번 수상은 세계 애니메이션계가 한국을 주류 창작국가로 평가한 덕분"이라면서 "감독이나 제작자 개인에게 영예가 돌아가는 실사영화의 세계 영화제 수상보다 오히려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 국제 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김병헌 사무국장은 "'마리 이야기'의 수상 이후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국 애니메이션 특별상영전 등을 통해 현지에서 한국작품에 대한 인식이 꾸준히 향상된 결과"라고 말했다.

이들 국내 관계자는 첨단기술을 동원한 유럽작품 등과의 경쟁 속에서 전통적인 기법에 가까운 '오세암'이 수상작으로 선정된 데는 한국적인 이미지와 정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작품을 하청생산이나 일본.미국의 아류로만 여기던 세계 관객들의 생각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성 감독 역시 "여러 인터뷰에서 다른 한국작품들은 미국이나 일본과 비슷하던데 '오세암'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2000년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TV시리즈 '하얀 마음 백구'를 만들었던 주인공이다. '… 백구'와 '오세암' 모두 토속적인 배경에서 순수한 동심을 그려냈다.

*** 성백엽 감독 "우연 아니다"

"'…백구'에서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오세암'에 담으려고 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원작의 힘이 컸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거든요. 개인적으로도 꼭 한번 작품에 담고 싶었던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이날의 영광까지 '오세암'이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5월 국내 극장가에 개봉했지만 일반 실사영화와 교차상영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곧 막을 내려 구민회관같은 상영장을 찾아나서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꾸준히 관객이 찾아줘 제작비를 손해보지는 않았다.

성 감독은 "중간에 제작비가 조달되지 않아 6개월쯤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면서 "고통 속에서도 함께 해준 동료가 고맙다"고 영광을 돌렸다.

이후남 기자

['오세암'은 어떤 작품] 엄마 찾는 오누이…수려한 풍광에 담아

'오세암'은 작고한 동화작가 정채봉씨가 펴낸 동화가 원작이다. 주인공인 다섯살배기 소년 길손이는 엄마의 얼굴을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 앞 못보는 누나 감이의 손을 잡고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엄마를 찾아 길을 떠난다. 철부지 길손이는 누나의 형편도 생각지 않고 온갖 개구쟁이 짓을 벌인다. 잠시 몸을 의탁하게 되는 절집에서는 날짐승을 선방으로 몰고들어오거나 법회 도중에 방귀를 뀌는 에피소드로 웃음을 자아낸다.

애니메이션'오세암'에서는 두 남매 외에 풍경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 두 남매의 여정을 따라 단풍으로 물든 산하와 흰 눈으로 뒤덮인 암자 같은 한국의 사계절이 시종일관 서정적인 배경으로 등장한다. 길손이가 어린 부처가 되는 결말은 원작 그대로인데, 어린이용 작품으로만 보기에는 너무나 처연한 슬픔을 전해준다.

'오세암'은 스케치부터 동화(動畵)까지 한 장 한 장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제작됐다.

이후 색을 입히는 작업부터만 컴퓨터로 처리했다.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컴퓨터 애니메이션과 달리 그림 전반이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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