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CIA, 창설 50주년 맞아 위상설정에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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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 중앙정보국 (CIA) 이 창설50주년을 맞아 새로운 위상설정에 고심하고 있다.

냉전이 사실상 막을 내리고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남게 되자 CIA의 역할과 입지도 줄어든 탓이다.

CIA는 지난 47년7월26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만들어졌다.

각종 첩보.정보를 수집.분석해 중요한 사안을 적시 (適時)에 대통령에게 보고, 통치행위에 활용토록 한다는 취지였다.

2차세계대전때 일본의 진주만공습을 앞두고 사전에 공격징후가 많았으나 이를 책임지고 취합.정리하는 기관이 없어 당했다는 반성이 계기가 됐다.

그러나 정보분석기관으로서의 CIA 본연의 성격은 냉전시대를 거치며 '비밀공작기관' '스파이기관' 으로 변질됐다.

옛 소련등 공산권의 팽창저지를 빌미로 미국의 국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내정에 적극 관여하는 사례도 빈발했다.

CIA 역대 책임자들조차 인정하는 사실이다.

CIA의 정확한 인원.예산은 법에 의해 공개치 않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예를 들어 70년대의 경우 총인원이 적게는 1만6천5백명에서 많게는 20만명에 이르며 예산 역시 수십억달러에서 7억5천만달러 사이라는 추정이 나올 만큼 그 인원과 예산규모등이 베일에 싸여 있다.

CIA의 50년은 말 그대로 영욕 (榮辱) 의 세월이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때 CIA는 이란과 과테말라에 쿠데타가 발생하도록 공작을 꾸몄다.

케네디 대통령때는 마피아와 연계, 쿠바의 카스트로 살해를 기도했으며, 피그즈만 침투실패로 대중의 지지와 권부의 지원를 잃기도 했다.

닉슨 대통령은 국내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4만명이 둘러앉아 신문이나 읽고 있는 곳' 이라며 CIA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낸 적도 있다.

또 카터 대통령때는 대규모 정화운동이 전개돼 부정에 연루된 혐의를 받거나 무능력하다고 인정된 요인들이 대거 옷을 벗었다.

레이건 대통령시절 다시 비밀공작의 전성기를 맞았으나 이란 - 콘트라 스캔들로 주춤해졌다.

91년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국장이 다섯번이나 바뀌는등 조직의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달 의회 정보위원회에서는 "CIA는 정보분석의 폭과 깊이, 그리고 세계의 정치.군사.경제상황을 모니터하는 전문기술이 부족하다" 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CIA의 새로운 위상정립과 관련, 창설당시의 취지를 떠올리도록 충고한다.

즉 CIA는 미 대외정책의 '비밀병기' 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지금처럼 여러 방면을 두루 챙기는 대신 5~6개 필요한 부문에만 치중하고, 미국의 국익을 해칠 가능성이 높은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비밀공작에서도 손을 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와함께 인원.예산을 대폭 줄여 '작지만 능률적인 기관' 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는 충고도 나오고 있다.

뉴욕 = 김동균 특파원

▶46년1월 CIA의 전신인 '중앙정보그룹 (CIG)' 창설

▶47년7월 CIG 해체되고 CIA 창설

▶49년6월 'CIA법' 에 따라 CIA에 특별행정권한 부여

▶56년2월 대통령 직속 '해외정보공작자문단 (BCFIA)' 설치

▶61년4월 쿠바 피그즈만 침투사건 발생

▶62년10월 쿠바 미사일사태 발발

▶75년2월 의회, CIA의 불법 국내공작 수사

▶77년7월 카터 대통령, 특별위원회에 CIA 예산 감독권 부여

▶82년6월 레이건 대통령, CIA 요원의 신분 공개시 처벌하는 '정보원 신분보호법' 신설

▶84년10월 CIA의 활동에 한해 예외적으로 정보공개의무에서 제외토록 규정

▶91년3월 CIA 신청사 확장공사 마무리

▶95년7월 해외공작기구 경제첩보 강화 위해 대폭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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