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 청장, 사퇴 후 고 김남훈 부친에 문자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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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 경찰청장 후보자가 10일 서울지방경찰 청사에서 ‘용산 참사’의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발표한 뒤 차에 오르고 있다. [강정현 기자]

 10일 오후 2시 대전시의 국립현충원. 김석기 경찰청장 후보자가 비통한 표정으로 묘역 앞에 섰다. 그는 눈을 감고 고개 숙여 참배했다. ‘용산 재개발 농성자 사망 사건’으로 숨진 고 김남훈(31) 경사가 잠든 곳이었다. 이날 김 후보자는 “경찰청장 후보자와 서울경찰청장에서 사퇴하겠다”는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자신은 물러나지만 특공대 투입은 불가피했고, 15만 경찰이 동요해선 안 된다는 소신을 반영한 행보였다. 현충원에서 돌아오던 길에 그는 서울 방배동 남태령 자락의 경찰특공대 본부에도 들러 대원들을 위로했다. 고 김 경사의 부친 김권찬씨에게도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제가 아드님을 잘 지켜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드님은 훌륭한 경찰관이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김 후보자는 특공대로 가던 중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용산 사건으로 6명이 희생됐다. 물론 모든 생명은 고귀하다. 그러나 범법 농성자들과 숨진 김 경사를 똑같이 대하는 건 정말 잘못됐다”며 “이런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하고 싶어 현충원부터 찾았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기자회견 때의 낮은 목소리와 달리 그의 말은 때로 격앙되고 톤도 높아졌다. 특히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다”고 말할 때가 그랬다. “이번 사건을 전기로 꼭 법질서가 세워져야 합니다.” 그는 “경찰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이 경찰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대통령이 9일 라디오 연설에서 ‘책임자 사퇴는 그리 시급한 일이 아니다’고 했다”며 “그러나 경찰청장 인사청문회와 경제입법 처리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할 국면에서 제가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에 침묵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청장 후보자 신분으로 보낸 지난 20여 일은 김 청장에게 악몽의 연속이었다. 후보자로 내정된 직후인 지난달 19일 그는 기자들과 만나 “불법 폭력시위로 서울 도심이 마비되고 경찰이 부상당하는데 정당하게 막아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다음날 용산 사건이 터졌다. 당시 남일당 빌딩을 둘러보던 김 청장은 6명의 처참한 시신을 직접 보곤 한마디도 못했다. 그 뒤론 청사에서 숙식하며 검찰 수사를 지켜봤다. 그에겐 무거운 사퇴 압력이 계속 가해졌다.

김 후보자는 “사표가 수리되면 선친 묘소가 있는 경북 영천의 호국원부터 찾겠다”고 했다. 지난해 작고한 그의 아버지도 경찰관이었다. 10일 대전 현충원에선 고 김 경사 묘역을 참배한 뒤, 5년 전 숨진 장인(장군 출신)의 묘소도 찾아 복잡한 심경을 다스렸다. 많은 경찰관이 그의 사퇴를 아까워하고 있다. 퇴임 뒤의 계획을 물었다. 김 후보자는 “30년간 경찰만 생각했고, 달리 아는 것도 없고…”라고 말했다. 여러 명이 거론되는 후임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해서도 “제가 얘기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이날 용산 범국민대책위는 “김 청장의 사퇴는 여론무마용”이라며 “책임을 경찰·청와대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려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라고 주장했다. 농성을 하다 숨진 양회성씨의 부인 김영덕씨는 “제 식구 감싸기만 한다. 유가족들에게 유감스럽다고 말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술·강인식 기자 ,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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