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공부] 개구쟁이 아이들 어떻게…“목소리 낮추고 아이 마음 읽어 주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7일 서울 강남 학동초등학교에서 서울시 학생 상담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인 강수경씨가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학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황정옥 기자]

평범한 ‘주부’에서 베테랑 학생상담 ‘자원봉사자’로

중1 딸과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둔 이정선(39·여)씨. 그는 교육프로그램 개발업체에서 일하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일보다는 자녀교육이 먼저’라는 생각에서였다. 몇 년간은 애들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작은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들고 온 가정통신문이 그를 자극했다. ‘학생 상담 자원봉사자 모집’이란 내용이었다. 안 그래도 이씨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고, 교사자격증도 있었다. 더 많은 학생에게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나눠주고 싶었다.

중1·초4·초2 세 자녀를 둔 강수경(43·여)씨도 마찬가지.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의 길을 택했던 강씨다. 그러나 두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낸 후 왠지 ‘세상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자원봉사를 결심했다. 2006년 2월, 이들은 같은 꿈을 안고 학생상담 자원봉사자로 지원했다. 강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에는 벚꽃이 만개한 4월에 2주 동안 자원봉사 기본교육을 받았습니다. ‘어린 학생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교육받았는데, 기분이 무척 좋았어요.”

그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오전 9시 시작하는 교육을 위해 새벽녘부터 서둘러야 했지만 자신들을 보고 웃음지을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행복했다. 그리고 그해 5월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학생상담 자원봉사자로 배치됐다. 벌써 4년차, 이제는 ‘베테랑’ 소리를 듣는다.

아이들을 통해 느낀 건 ‘놀라움’ 그 자체

그러나 꿈과 현실은 무척 달랐다. 미술을 전공하고, 장애인 복지센터와 법률사무소에서 미술심리 치료 자원봉사 경험이 있던 전하용(45·여)씨. 그는 2006년 딸이 다니는 대곡초교에서 학생상담 자원봉사를 하면서 아이들의 폭력성에 크게 놀랐다. 같은 동네에서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만 비쳤던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욕 없이는 한 문장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아이들, 팔과 다리 없는 사람을 그려놓고 즐거워하는 아이들…. 그는 “장애인 복지센터의 자폐아들과 법률사무소에서 매맞는 여성들을 상담하면서도 그처럼 억압된 심리상태를 본 경우는 드물었다”고 말했다. 그는 “비로소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짓눌린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알았다”고 회상했다.

아이들은 억압된 심리를 TV와 게임기에 의존해 풀고 있었다. 2007년 ‘쩐의 전쟁’이란 드라마가 유행할 당시 장래 희망을 물으면 ‘사채업자’라는 대답이 단연 1위였다고 한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다음 찢어보라고 해보았다. ‘학원폭파’를 적은 아이들이 50%를 넘었다고 한다. 그는 종이를 조각조각 찢는 모습에 또 한번 놀랐다. 전씨는 “현실에서 억눌린 감정을 TV와 게임에 의존하면서 수업시간만 되면 잠을 청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며 자신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도 됐다고.

학생들이 알려준 ‘배움’, 그리고 ‘실천’

사진 왼쪽부터 전하용김명숙강수경이정선씨. [최명헌 기자]

“한 학생당 1년에 2~3시간의 상담수업 시간으로 학생들 고민을 해결해 준다는 건 무리죠.” 아이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싶었다는 김명숙(45·여)씨. 그는 자원봉사 5년차다. 김씨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아이들은 달라졌다”고 말했다. 다그칠 게 아니라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공유하는 게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최선책이란 걸 깨달았다고 한다.

이들은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준 지 4~5년 만에 어린 학생들의 잘못된 생활습관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공감’이란 걸 배웠다. 중2, 초등 4학년 자녀들이 TV 보는 것까지 통제했던 전씨는 지난해 처음으로 가요대전을 함께 시청했다. 빅뱅과 동방신기를 알게 됐다. 요즘은 학생들과 아이돌 가수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자녀들과의 벽도 허물어졌다.

김씨도 3년 전부터 자녀들과 대화할 때 목소리를 한 톤 낮췄다. “공부 안 하느냐?”가 아니다. “엄마가 공부에 도움은 줄 수 없겠지만, 원한다면 지금부터 네 방에서 책을 함께 볼게. 같이 들어갈까?”라고 한다는 것. 그는 “지난해 수험생이었던 딸이 힘들어할 때마다 차분하게 대화를 나눴다. 아이의 문제점과 원하는 게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딸은 결국 올해 이화여대에 합격했다.

그런데 이들에게 요즘 큰 고민이 생겼다. 초등학교부터 학습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상담시간이 줄어들 것이란 소식 때문이다. “학교와 학원에서 지친 아이들에게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줄인다고요? 그러면 아이들은 게임기와 TV에 대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잖아요. 학교가 엄마들의 힘을 믿고 맡겼으면 좋겠어요. 자정이 넘어 학원에서 돌아온 자녀에게 공부하라 한들 머리에 얼마나 들어오겠어요?”

최석호 기자 사진=황정옥·최명헌 기자

서울시 학생상담 자원봉사제
1985년 학부모를 활용해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활성화하겠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현재 서울지역 564개 초·중·고교에서 2260명의 학부모가 학생상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매년 12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홈페이지(serii.re.kr) 등을 통해 지원자를 모집한다.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뽑는다. 선발되면 학생상담 기초강의와 집단상담 프로그램 운영에 필요한 활동 실습 등을 받는다. 60시간의 교육 후 학교 현장에 배치돼 학생들의 집단상담과 인성교육을 맡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