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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거’손학규 불러낸 고 제정구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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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부가) 하려고 하려고 하다 안 되는 것은 어떻게 하겠느냐마는 국민들 눈에는 못사는 사람들을 그냥 사람 취급 안 하고 쓰레기처럼 걷어치우려는 것으로 보이는 게 마음 아프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9일 서강대 곤자가컨벤션홀에서 열린 고 제정구 의원 10주년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상선 기자]


9일 7개월 만(지난해 7·6 전당대회 이후)에 외부 공식행사에 모습을 보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서강대에서 열린 ‘빈민운동의 대부’ 고(故) 제정구 전 의원의 10주기 추모 행사 및 그와 함께 활동했던 정일우 신부의 자서전 출판기념회 자리에서다. 손 전 대표와 제 전 의원은 서울대 재학 시절 인연을 맺었다. 후진국 문제를 연구하는 서클 ‘후문회’에서 선후배로 만난 이래 1970년대 빈민운동을 함께하기도 했다. 손 전 대표가 대학 입학으론 1년 선배다. 그 후 두 사람의 길은 엇갈렸다. 손 전 대표는 유학→대학교수의 길을, 제 전 의원은 사회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이후 98년 한나라당(신한국당+꼬마민주당 합당)에서 다시 만나 한솥밥을 먹었다.

손 전 대표는 이날 추모사에서 “용산 참사가 일어났을 때 많은 국민이 제정구 선생을 생각했을 것”이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제 선생이 살아 있다고 용산 참사를 막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그가 살아 있었다면 용산 참사 유가족과 그들과 아픔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최소한 마음으로 의지할 곳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70년대 초반 청계천 판자촌에서 빈민활동가로 만난 제 전 의원과의 인연도 언급했다. 손 전 대표는 “제 선생을 만난 건 대학 다닐 때지만 제대로 만난 건 청계천이었다”며 “나는 몸은 판자촌에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어떻게 도움을 줄지 생각하지 못했다. 제 선생은 몸으로 실천했고, 그들과 함께 살길을 찾아나섰다”고 말했다.

예상 밖으로 길어진 이야기는 강원도 춘천 농가에서 칩거 중인 자신의 근황으로 이어졌다. 그는 “실제 이 역사, 이 사회에서 손학규가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고민이 ‘통합의 정치’에 맞춰져 있음도 소개했다. 그는 “제 선생에게서 우리가 배운 것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삶 속에서 어떻게 미래를 개척하느냐”라며 “우리가 통합을 말하지만 통합은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강제적 통합이나 흘러간 노래를 부르듯 과거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미래를 지향하는 자세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엔 당시 사회운동 시절부터 제 전 의원과 인연이 깊은 원혜영 원내대표와 김부겸 의원, 제 전 의원의 비서관 출신인 백원우·조정식 의원 등 민주당 인사들도 참석했다. 손 전 대표는 자신의 복귀 시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엔 “때가 되면…”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임장혁 기자 ,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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