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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m 불기둥 관람객들 덮쳐 2만여 명 비명 … 아수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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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불길이 확 번지자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어요.”

한 해 소원을 빌고 액운을 떨쳐내려는 생각에 정월 대보름 날 화왕산 정상에 올랐던 관람객들은 ‘불벼락’을 맞았다. 드넓은 억새밭을 태우며 50여m 높이로 솟아오르던 불기둥이 갑자기 방향을 바꾼 바람에 밀려 관람객을 덮친 것이다.

9일 경남 창녕군 화왕산에서 정월 대보름을 맞아 억새 태우기 행사가 열렸다. 오후 6시20분쯤 강한 바람이 불면서 불길이 갑자기 관람객을 덮치는 바람에 등산객 4명이 사망했고 50여 명이 부상했다. 연기가 몰려오자 관람객들이 자리를 피하고 있다. [창녕=송봉근 기자]


사고 지점에서 50여m가량 떨어져 있었다는 이모(28)씨는 “불이 크게 번지면서 순식간에 시뻘건 화염과 검은 연기가 산 정상을 뒤덮어 앞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며 “곳곳에서 관람객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는데 숨진 사람은 불길 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변을 당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당시 나는 억새 태우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 중이었는데 불길이 갑자기 크게 번질 때 뒤쪽에서 ‘사람이 떨어졌다’는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고 말했다.

박모씨는 “사고가 난 배바위 쪽은 방화선이 완전히 구축되지 않고 억새가 누운 채 남아 있었는데 이쪽으로 불길이 번져 나왔다”며 “불이 나자 관람객들이 우왕좌왕한 데다 방화선과 낭떠러지와의 간격이 2~3m에 불과해 많은 사람이 밀려 낭떠러지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갑자기 덮친 불길에 큰 화상을 입은 관람객들은 곳곳에 쓰러져 도움을 호소했다.

사고가 발생하자 행사본부에서는 “안전사고가 났습니다. 등산객 여러분은 안전요원의 지시에 따라 침착히 하산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을 시작했다. 그러나 인명 사고가 발생한 데다 큰 불길이 솟구치자 관람객들은 적지 않은 혼란에 빠진 뒤였다.

2만여 명의 관람객은 연기가 자욱해 앞뒤 분간이 잘 되지 않는 가운데 방화선을 따라 난 좁은 길을 작은 손전등 불빛이나 앞 사람의 인기척에 의지해 간신히 하산했다. 관람객들은 하산길 내내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김모(40·여)씨는 “안전요원들이 곳곳에 물통을 들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지만 이번처럼 순식간에 발생한 큰 불을 잡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였다”며 “하산길도 서둘러 내려가는 사람들이 몰려 위험천만이었다”고 말했다.

 창녕=김상진·송봉근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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