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바그다드 천사의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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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천사의 시, 원제 The Ali Abbas Story
제인 워렌 지음, 김영선 옮김, 오래된미래, 296쪽, 9800원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 억압받는 이라크인들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겠다며 포문을 연 이라크 전쟁. 미완(未完)의 이 전쟁은 그러나 많은 민간인들에게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지난해 3월 31일 밤, 바그다드 외곽 자파라니야 마을의 한 민가에 미군이 쏜 미사일 두 발이 떨어졌다. 섬광이 스쳐가던 찰나에 12세 소년 알리 이스마일 압바스는 모든 것을 잃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동생과 형제·자매 등 16명의 일가 친척이 현장에서 숨졌다. 알리는 미사일 파편에 맞아 두 팔이 너덜너덜해졌고, 전신의 35%에 3도 화상을 입었지만 본능적으로 아들의 머리를 감싸안은 어머니 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며칠 뒤 로이터통신은 이 소년의 모습을 전 세계에 타전했고, 사람들은 전쟁의 참상에 다시 한번 전율했다. “우리가 미군에게 무슨 잘못을 했기에 미군이 이라크인을 폭격한 겁니까? 우리 집을 폭격한 미군 조종사도 우리처럼 불에 탔으면 좋겠어요.” 누더기 천 조각으로 만든 간이침대 위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알리의 눈에는 가족을 잃은 슬픔과 미군에 대한 분노, 화상과 싸워야 하는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고통은 이유없이 희생된 수많은 이라크인들의 참상을 대변하는 상징이 됐다. 알리의 참혹한 모습이 공개되자 도움의 손길이 전 세계에서 밀려왔다. 인터넷에 알리를 돕기 위한 사이트들이 만들어졌고, 각국의 자선 기관들이 알리 돕기운동을 벌였다. 영국의 한 수족 장애인협회에는 한달도 안돼 27만 파운드(약 5억원)의 성금이 모아졌을 정도다.

『바그다드 천사의 시』는 꺼져가는 한 소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지구촌이 보인 따뜻한 인간애와 감동의 주인공인 소년 알리에 관한 이야기다. 알리와 함께 생활하며 이 책을 쓴 영국 데일리 익스프레스 기자는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알리의 가족 이야기부터 미사일이 떨어져 일가족이 몰살된 상황, 계속되는 봉합수술과 피부이식 수술, 그리고 의수를 차고 학교생활에 적응해가는 알리의 현재 모습까지 꼼꼼히 기록했다.

포화 속에 내버려진 이라크 아이들과 중화기로 무장한 연합군. 책에 실린 이라크의 현지 사진들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고 있다. 지난달 말까지 이라크전으로 목숨을 잃은 이라크 민간인은 1만1500여명. 미국은 개전 초 최첨단 정밀무기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이는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전쟁에서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가족과 두 팔을 잃고도 새로운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알리는 행운인지도 모른다.

미국이 종전(終戰)을 선언한지 1년이 지난 지금, 알리는 쿠웨이트에서 피부이식 수술을 받고 영국에서 최첨단 인공팔을 이식받아 재활치료에 매달리고 있다. 아직 혼자 음식을 먹거나 세수할 만큼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외삼촌의 도움으로 학교에 다니고 동물원 구경도 다닌다. 지난해 10월에는 영국의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병실에서 만났고, 연말에는 영국정부가 주관하는 제30회 국제 용감한 어린이 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도와주는 영국인들에 대해 여전히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다. “제가 병원에 있을 때 영국인들은 편지를 보내줬어요.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미국인들을 돕고 있잖아요.”

군 장교가 되겠다던 소년의 꿈은 이제 컴퓨터 기술자로 바뀌었다.

“폭격으로 숨진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새 팔로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어요.”

알리가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또다른 꿈이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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