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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그룹 경영진 곳곳서 부실책임 목소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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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선홍 (金善弘) 기아그룹회장은 부도유예협약 대상기업으로 지정된 15일 밤늦게까지 진행된 그룹 사장단회의에서 '치욕' 이란 말을 썼다.

金회장은 이날을 '비참한 하루' 라고 표현하면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모든 임원은 임기가 2개월밖에 없다는 각오로 임해 달라" 고 요구했다.

80년대초 '봉고 신화' 이후 전문경영인 회장으로 일부에서 '한국의 아이아코카' 라는 말까지 들어온 金회장에게 이번 사태는 그야말로 '치욕' 이 아닐수 없다.

그의 좌절은 개인의 좌절에 끝나지 않고 경영과 자본의 분리를 전제로 한 전문경영인체제의 도입 확대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때문에 金회장은 2개월간 자신과 경영진이 전력을 다해 기아를 다시 살리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어보면 두달안에 판가름날 '김선홍 체제' 의 존망 (存亡) 을 앞두고 배수진 (背水陣) 을 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그 기간동안 金회장등 경영진들은 갖고있는 모든 역량을 최대한 동원해 그룹 정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기아는 현 경영진을 중심으로 그룹 회생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 고위관계자는 16일 "특수강사업에 진출하는등 방만한 경영을 한 현 경영진의 책임" 을 강하게 거론함으로써 최고경영진의 퇴진 가능성을 시사했다.

금융권도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며 최고경영진도 예외가 될수 없다" 는 분위기다.

기아는 지난달 제2금융권 담당자들에게 자구책을 설명하면서 도움을 구했다.

그러나 이에대한 금융권의 반응은 "실현 가능성이 모호하다" 는 것이었다.

기아가 곤경에 처하게된 지휘체제 자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기아를 늪에 빠뜨린 기아특수강 (구 대한중기) 인수와 과잉투자에 대한 경영진의 판단미스에 대한 책임문제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기아특수강은 부채가 1조3천억원 (5월말현재)에 매출은 겨우 3천2백억원 (96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15일 기아 사장단회의에서는 임직원 사표등에 대한 거론은 없었다.

16일에는 부동산 매각등을 통한 2조원 가량의 자금확보 계획등 자구책도 내놓았다.

이같은 경영진의 노력이 금융권의 동의를 얻을지는 두고봐야 한다.

두달간의 유예기간동안 기아 최고경영진의 진로는 세가지로 전망된다.

우선 두달동안 기아그룹 관계사들을 매각하고 자동차 전문소그룹으로 남아 '김선홍 체제' 를 유지하는 경우다.

물론 극적인 회생후 金회장이 명예스런 퇴진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또 하나는 금융권등의 최고경영진에 대한 물갈이 요구로 조만간 金회장체제가 퇴진할 가능성이다.

자구노력을 새 경영진에게 맡기는 것이다.

세번째는 두달간의 유예기간이 지나도록 그룹이 되살아날 기미가 안보인다면 채권은행단이 김선홍체제를 퇴진시키고 법정관리등의 절차를 밟는 경우다.

자동차는 일반 소비재와 달리 많은 돈이 들어가는 내구 소비재라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소비자들의 구매결정이 혼란스러워지고▶기존 고객의 서비스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며▶부품및 협력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된다면 경영권 처리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제3자 인수의 경우도 생각해 볼수 있으나 포드.마쯔다등 해외합작선이 있고 지분이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박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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