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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예술가’ 시대를 연 천재, 뒤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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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13면

뭐 재미있는 책 없나. 있다, 추리소설. 재미? 확실하다. 시속 100페이지, 가볍게 넘는다. 그렇다고 재미와 흥분이 전부는 아니다. 비장하고, 거칠고, 찡하다. 사나이들의 기백과 의리, 멋과 낭만, 연민과 고뇌, 이런 게 중독성이 있다. 물론 안 읽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다. 그러나 이 재미, 모르고 살기엔 아깝지 않나. 도대체 어떻기에, 구경 한번 가 보자.

남윤호 기자의 추리소설을 쏘다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도 되는 게 추리소설이다. 그래도 대략의 계보를 알면 더 재미있을 수 있다. 우선 추리소설의 효시는 무엇일까. 평론가들은 에드거 앨런 포(1809~49)의 『모르그가의 살인』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본다.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는 포가 1841년 발표한 단편이다. 주인공은 오귀스트 뒤팽이니, 소설 속에 나오는 최초의 탐정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프로 탐정이 아니다. 별다른 직업 없이 빈둥거리는 청년 실업자이자, 얼마 안 되는 유산으로 먹고사는 고등 룸펜이다. 원래는 꽤 유명한 집안 출신이지만 가운이 기우는 바람에 은둔해 사는 몰락 귀족의 후예다. 사회활동을 하겠다든가, 집안을 다시 일으키겠다든가 하는 의욕은 아예 없다. 주로 밤에 책을 읽거나 사색을 하는 지독한 야행성이다. 해가 뜨면 온 집 안에 커튼을 친 채 촛불을 켜고 지낸다. 괴팍하다.

그러나 머리 하나는 천재다. 수학자와 시인을 절반씩 섞어 놓았다고나 할까. 분석력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사건을 깔끔하게 해결한다. 뒤팽은 『마리 로제의 비밀』(1842~43년)과 『도둑맞은 편지』(1845년)에서도 명석한 추리력을 보여 준다.

그는 경찰의 특기인 현장주의와 근면함을 조롱한다. “대상을 너무 가까이서만 보기 때문에 오히려 잘 보지 못한다.” 발보다 머리를 쓰라는 말이다. 사건을 해결한 뒤엔 경찰을 향해 “있는 것을 부정하고, 없는 것을 설명하는 수완으로 명성을 얻는다”고 야유한다.

베꼈다고 하면 좀 심한 말이지만 나중에 나온 추리소설들은 대개 이런 틀을 이었다. 뒤팽이 나오는 세 작품 모두 ‘나’라는 1인칭 화자가 사건을 들려준다. 이를 그대로 차용한 게 코넌 도일이다. 또 밀실 살인(모르그가), 두뇌형 추리(마리 로제), 의표를 찌르는 대담한 설정(도둑맞은)도 추리작가들이 애용하는 패턴이 됐다.

1세대 탐정들은 뒤팽과 닮은 점이 많다. 고급 유머를 구사하며, 사색적이고 탐미적이다. 말을 해도 형이상학적이고 분석적으로 한다. 주로 그런 걸로 폼을 잡는다. 뒤팽이 “대부분의 인간은 가슴에 마음을 비춰 주는 창이 있어서 심중이 들여다보인다”고 하자 ‘나’가 움찔하는 장면도 있다.

이들에겐 살인범 수사가 일종의 예술이다. 그래서 미국의 추리작가 로스 맥도널드는 뒤팽과 셜록 홈스를 ‘탐정 예술가’로 불렀다. 불가해한 사건을 정확하고, 정교한 논리로 규명한다. 그것도 예술적으로. 그러나 너무 이런 쪽으로 치우치다 보니 살인이 아트, 아니면 게임이 돼 버렸다. 현장감·현실감이 떨어진 거다. 그 반작용으로 나온 게 20세기 초 하드보일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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