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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골든 트라이앵글’에 승부 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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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24면

“운(運)이 좋았을 뿐이다.”
윤영두(58·사진)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최근 잇따른 경사를 주변 사람의 공으로 돌렸다. 그는 지난해 12월 초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 자신도 “1시간 전에야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깜짝 인사였다. 하지만 사내에선 그의 승진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지난해 관리본부장으로 위기관리위원장도 겸직한 그는 고유가·고환율의 악조건 속에서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장 취임 한 달여 만에 그에겐 낭보가 전해졌다. 아시아나항공이 큰 상을 받게 된 것. 미국의 세계적인 항공전문지 ATW(Air Transport World)가 ‘올해의 항공사(Airline of the Year)’ 수상업체로 선정했다고 지난달 말 통보해 왔다. 윤 사장은 이 상을 받기 위해 17일 미국 출장을 떠난다.

‘항공업계 노벨상’ 받은 아시아나항공 윤영두 사장

-ATW ‘올해의 항공사’상이 대단한 건가.
“1974년 제정된 이 상은 항공업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매년 한 항공사에만 줘 수상 경쟁이 치열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아시아에선 싱가포르항공·캐세이퍼시픽·ANA·JAL 4개사만 받았다. 국내에선 우리가 처음 받게 된 것이다. 한국 항공업계의 위상을 글로벌 톱 수준으로 올려놓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어떻게 좋은 점수를 받았나.
“88년 회사 출범 이후 ‘최고의 안전과 서비스를 통한 고객 만족’이란 경영이념을 지켜온 게 주효했다. 여기에 2004~2007년 4년 연속 흑자를 내고, 지난해에도 최악의 경영 여건 속에서 3분기까지 흑자 기조를 유지한 게 힘이 됐다.”
윤 사장은 자신을 ‘운 좋은 사람’이라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그가 금호타이어 미국법인 부장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근무하던 97년 외환위기가 닥쳤다. 한국 본사의 미국법인 지급 보증이 끊어지면서 국내 은행들이 빌려줬던 돈을 앞다퉈 회수하기 시작했다. 위기였다. 그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현지 금융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끈질기게 달라붙은 덕분에 3000만 달러가 넘는 대출금을 외국계 은행으로 돌릴 수 있었다. 이런 점을 인정받아 98년 그는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국내로 복귀하게 된다. 이쯤 되면 자주 회자되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어록이 떠오른다. “운도 실력이다.”

윤 사장은 회사의 일상적인 관리업무를 책임지는 최고운영책임자(COO)다. 아시아나항공의 최고경영자(CEO)는 박찬법 부회장이 맡고 있다. 윤 사장에게 존경하는 경영자를 꼽아 달라고 하자 “박삼구 회장과 박찬법 부회장”이란 ‘모범답안’을 주저 없이 내놨다. “기업의 CEO는 비전을 제시하고, 직원들이 따를 수 있도록 솔선수범하면서 추진력과 결단력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그는 CEO의 역할을 이렇게 설명했다.

윤 사장 본인은 딱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주변에선 그가 숫자 경영과 스킨십 경영에 일가견이 있다고 얘기한다. 관리본부장 시절, 1000억원대 프로젝트인 인천 격납고 건설 현장에 들렀다가 세부 비용항목을 억원 단위까지 암산으로 제시해 담당 임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한현미 환경고객부문 상무는 “윤 사장이 어릴 적 주산을 해서인지 숫자에 매우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사장은 아랫사람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경영자이기도 하다. 회사 고객만족팀 여직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한 직원에게 “시어머니 모시고 살면서 멀리 용인에서 출퇴근하느라 힘들지”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 좌중을 감동시킨 일도 있다. 말단 직원 가정사까지 머릿속에 입력돼 있다는 얘기다.

-2005년 12월 금호타이어를 떠나 아시아나항공에 왔을 때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냈다. 쓰는 용어부터 생소하고, 문화도 많이 달랐다. 처음엔 공항이나 임원을 코드명으로 부르는 데 익숙하지 않아 고생했다(이를테면 회사 내에서 박삼구 회장은 ‘CCC’, 윤 사장은 ‘DDP’ 조원용 홍보담당 상무는 ‘DPR’로 불린다).”

-자신의 경영 스타일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생활신조이자 경영신조다. 우리 회사는 ‘아름다운 기업,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스스로 부른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저마다 주어진 자기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이 화음을 맞추고 조율하는 조정자 스타일의 경영자가 되고 싶다. 여객·화물·운항·정비·서비스·관리·아시아나클럽 등 각기 성격이 다른 7개 본부의 화합을 이뤄내는 게 중요하다. 노사 관계는 물론이고, 조직 상하 및 수평 간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끌어 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항공산업은 유가와 환율에 민감하다. 유가가 오를수록, 원화가치가 떨어질수록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난해엔 두 가지 악조건이 동시에 출현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 바람에 아시아나항공도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17% 늘어난 4조2615억원을 기록했지만 527억원의 영업적자에, 227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윤 사장도 “최근 10년래 가장 큰 위기”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윤 사장은 아무리 힘들어도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외환위기 때도 해고는 없었다. 그 점이 조직원에게 자긍심과 애사심을 심어 줬다. 효율적인 인력 배치는 해도 인위적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

-이번 위기를 허리띠를 졸라매는 ‘관리’만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보나.
“원가 절감과 구조조정이 최상의 위기 극복 시나리오는 아니다. 원가 절감은 당연히 상시적으로 해야 하지만 신규시장 개척과 해외 영업력 강화, 중·단거리 노선 우위 유지로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것도 하나의 위기 극복 전략이다.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인적 구조조정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흑자 전환을 전망했던데.
“흑자 전망을 언급한 것은 최선의 시나리오를 전제로 사장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최선의 시나리오는 환율이 안정되고, 국제유가가 연평균 60달러 이하에 머물고, 항공 수요가 회복되는 것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올해 여객 수요는 3%, 화물 수요는 5% 감소가 예상된다. 우리가 강점을 보이는 한·중·일 골든 트라이앵글(황금 삼각지)에 집중해 수요 감소를 극복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내년 3월 개항하는 일본 이바라키공항에 매일 취항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 시행에 발 맞춰 뉴욕행 비행기를 매일 띄우는 등 미주 노선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근 저가 항공사가 급증하면서 경영난을 겪는 곳이 많다고 들었다. 아시아나가 출자한 에어부산은 어떤가.
“에어부산은 저가 항공사라기보다 부산을 기반으로 한 지역 항공사다. 애초 부산시와 부산지역 상공인이 설립한 뒤 우리에게 위탁경영을 요청해 와 46% 지분을 인수하고 경영을 맡게 된 것이다. 에어부산은 기존 항공사와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싸게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10월 취항 후 부산~김포, 부산~제주 노선은 높은 탑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일본 및 동남아 노선도 취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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