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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예수 말씀을 칼질하고 색칠한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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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
에른스트 블로흐 지음, 박설호 옮김
열린책들, 2만5000원

  부글거리던 이념의 시대인 1980년대 상황에서 막 튀어나왔을 법한 책이다. 『희망의 원리』(전5권)로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블로흐의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는 그 때문에 추억여행 삼아서라도 읽어볼 만하다. 메시지도 체제변혁을 겨냥하는 해방신학에서 그리 멀지도 않다.

이 고급스런 저술은 실은 그 이상이다. 지금의 한국 기독교를 비춰보는 거울로 맞춤인데다가 이미 고전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서구의 학생운동인 1968년 혁명 때 젊은이들이 매료됐다면 뭔가가 있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500쪽이 넘는 페이지에 작고 활자가 가득한 이 책을 읽어내려고 ‘거금’까지 투자했다면 꾹 참아야한다.

정성은 들였으나 요령이 부족해 번역문장이 모래를 씹듯 뻑뻑해도 공 들여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지금의 기독교는 엉터리”라는 아주 삐닥한 주장을 담고있다. 기독교의 오리지날 정신은 저항과 반역이고 그게 예수 삶의 메시지이기도 했단다. 문제는 체제와 권력의 장난이다. 권력 유지에 위험하다 싶으면 사정 없이 따귀 빼고 가시를 뽑아냈다. 심지어 성경의 원문에까지 칼질했고 그래서 ‘물렁뼈 기독교’를 만들어 제단 저편에 올려놓았다. 경건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깔끔한 금도금 처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의 ‘변조된 기독교’라는 비판인데, 맞고 틀리고는 저자의 뒷감당 여부에 달려있다. 멋지게 치러내면 훌륭한 신학적 저술이 되는 것이 아닐까?

저자가 논증에 공을 들이는 대목은 많은데 구약의 ‘욥기’가 그 하나다. ‘울부짖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욥은 아브라함 시대에 살았으며 물고기 뱃속에서 3일간 기도하고 살아나온 사람이다. 블로흐에 따르면 그는 세계가 정의로운 공간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저항 정신도 가졌다. 하지만 기원전 6세기 무렵 욥기에 대한 광범위한 수정작업이 진행된다.(206쪽)

구약만 그런 게 아니라 신약도 수정·가필이 진행됐다. 대표적인 것이 예수 스스로가 언급했던 ‘사람의 아들’이란 표현. 너무도 자주 반복됐던 이 표현에는 예수가 가졌던 혁명적인 변혁(종말론)의 꿈이 담겨있는데, 체제와 권력은 이런 표현이 불편했다. 때문에 권위주의적이고 경배대상인 ‘주님’으로 바꿔치기를 했다. 성경은 이런 변조로 가득하다.

오해 말 것은 이 책은 기독교에 대한 테러가 아니다. 더구나 블로흐 자신은 무신론자도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기독교의 본래 모습을 되살려내려는 지극한 마음이 도처에 엿보인다. 책의 대부분이 치밀하고 전문적인 논증으로 채워졌지만, 약간의 호기심만 있다면 읽어내기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 점 때문에 더 없이 현학적인 우리말 번역이라는 걸림돌이 더욱 더 아쉽다. 야들야들한 ‘연육제 번역’, 그게 필요했던 책이었는데….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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