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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학칼럼

로봇, 드디어 인간을 지배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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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로봇공학자라는 직업이 직업인지라, 언젠가부터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영화나 미래 공상과학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하면 빠짐없이 섭렵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화면으로 보여주는 화려한 그래픽 기술로도 나를 신나게 했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느껴지는,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상상력이 나를 좀 더 매혹되게 만들곤 했다. 이런 로봇영화들에 열광하는 이유는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정말 똑똑하고 힘센 로봇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미리 알고 싶다는 호기심을 달래주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개인용컴퓨터나 휴대전화가 우리 생활을 이렇게 변화시킬 줄 아무도 몰랐다. 마찬가지로 미래에 로봇이 우리 생활을 과연 얼마나 변화시킬지 지금 시점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인간의 모습을 닮은 로봇이 거리를 활보하게 될지, 또는 애완용 로봇개를 키우는 것이 부자의 새로운 취미생활이 될지, 수십 년 동안 로봇 개발의 일선에서 연구해온 나 자신도 궁금하기만 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러한 로봇이 인간생활에 깊숙이 들어오게 되면 인간과 로봇 간의 새로운 사회규범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로봇은 지하철에서 절대 자리에 앉을 수 없다’ 또는 ‘인도를 걸어갈 때 인간과 마주치게 되면 즉시 한쪽으로 비켜서야만 한다’와 같은 일반적 행동규범으로부터 시작해 전쟁에서의 살상 활동, 범죄에의 악용, 섹스 윤리에 이르는 인간 사회의 상식과 규범에 저촉되는 근본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기본 윤리규범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드는 생각은 ‘과연 이러한 기본적 규범만 마련되면 로봇과 함께할 우리의 미래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하는 점이다.

요즈음 현대인에게 휴대전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절대적이어서 어쩌다 휴대전화를 잊고 나오는 날이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된다. 예전에는 문제없이 외우고 다녔던 친구의 전화번호는 내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극장 예약도 못하고 막히는 길도 알 수 없다. 우리는 어느새 우리 삶의 대단히 많은 부분을 휴대전화에 의존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미래 인간의 동반자가 될 로봇에 대한 걱정은 사실 이런 의존성이란 의미에서 보면 더욱 심각할 수도 있다. 로봇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인간이 로봇에 기대어 점차 편해질수록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그들에게 종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극장가를 달군 ‘월-E’라는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영화를 본 독자도 꽤 있을 것이다. 오염된 지구를 떠난 인간들이 지구에 새로운 생명이 다시 싹틀 때까지 우주 도시에서 그 시기를 기다린다는 설정인데, 재미있는 것은 이 우주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모든 생산활동과 서비스를 로봇이 대신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인간은 잘 사육된 돼지처럼 무위도식하며 지내게 된다. 이들은 로봇에 의지해 인간으로서의 본성도 잃어버리고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등을 전혀 고민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로봇이 인간의 인지 능력을 넘어서는 시기가 머지않은 미래에 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일단 로봇의 지능이 인간 수준으로 올라서게 되면 그들이 가진 자기복제 능력으로 우리 인간을 추월하는 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질 수 있다. 줄기세포에 의한 인간복제가 커다란 사회 문제로 대두되듯 인간 지능을 언젠가 넘어설 수 있는 로봇에 대한 의존성 문제는 미리 심각하게 해법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생각하면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기능인 학습과 창조의 기능을 로봇에는 제한해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로봇의 전원을 언제든지 어렵지 않게 스스로의 판단으로 내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문상 KIST 프런티어 지능로봇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