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원 지음, 공원국 옮김
에코 리브르, 400쪽, 1만8000원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했지만, 기울어가는 청나라에서 “아편은 인민의 종교”였다. 비스듬히 기대 누워 몽롱하게 퍼진 아편 연기를 더듬는 게슴츠레한 눈길. 당시 ‘아시아의 병자’로 불린 중국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그래서 두 차례의 아편 전쟁은 서구 제국주의의 야만성을 고발하고 중국 민족주의의 각성을 촉구하는 역사적 사건이 된다. 마오쩌둥은 아편에 대한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을 동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제국주의와 아편을 몰아낸 빛나는 승리 뒤에서 그 ‘악마의 유혹’은 진실을 감췄다.
청나라 말기 성적 유희를 동반한 술자리에서 아편 흡연은 흔한 일이 됐다. 음식점에 아편 흡연실을 따로 마련해 두기도 했다. [에코 리브르 제공]
중국에서 아편은 원래 최상위 엘리트들의 사치품이었다. 15세기 중국에서 아편은 금값과 같았다고 한다.
황제와 왕자들이 탐닉했고, 지식인·관료 계층으로 번져 나갔다. 명나라 말기에 아편 꽃은 학자들의 정원에서 피어났다. 군자들은 자기집 뜰에서 양귀비를 키우며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었고, 열매의 진액을 농축한 아편으로 시적 몽상에 빠져들었다. 은밀히 여인의 방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이들의 아편 탐닉은 일반 대중과 자신들을 구별 짓는 사치스런 취향이었고 고급문화였다.
19세기 말 아편을 피우는 여인. 아편 흡연은 가정에서도 일상이 됐다.
아편은 외국이 강요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상류층이 스스로 도입하고 퍼뜨렸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1830년대에 이르자 아편 밀수가 확대되면서 아편의 대중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저잣거리의 비천한 서민들도 아편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학자·관료들은 이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상류층이 피울 땐 신분과 교양의 상징이었던 아편이 가난한 이들이 피우기 시작하자 범죄행위로 규정됐다. 아편의 정치화가 시작된 것이다.
저자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취향’과 ‘구별짓기’, 소스타인 베블런의 ‘과시적 소비’ 등 문화이론을 적용해 아편의 역사를 재해석했다. 아편을 인민의 적으로 규정한 중국 공산당도 항일 전쟁 시기에는 양귀비 재배로 군자금을 모았다는 증언도 소개한다. 금지된 것들의 역사는 흥미롭다. 영국의 아편 무역에 분개한 서구의 선량한 선교사들은 중국의 아편 중독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모르핀을 권장하기도 했다.
배노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