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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럼> 大選과 '가능성의 예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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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신한국당 경선이 난장판이다. 집권당의 아귀다툼은 유권자를 절망케 한다. 21세기 첫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경선에서 위기 극복과 미래상을 전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여당 공천만 받으면 마치 대통령이 되는 것으로 경선후보들이 착각한 것 같다.여당의 대선싸움은 국민이 대통령을 만든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망각한 데서 빚어진 것이다.

선거는 국민 주권이 행사되는 것이기에 유권자의 축제가 된다.그러나 여당 경선에선 국민을 주인으로 모셔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전혀 찾을 수 없다.경제와 법치,통합과 위기관리,세대교체와 문민개혁 등의 구호와 연설들이 요란하지만 국민에게는 과거 선거때마다 듣던 옛노래일 뿐이다.여당 경선이 유권자에게,조금도 국민의 삶에 와닿지 않아 마치 가설무대의 팬터마임을 보는 것같다.

정발협 소동은 난장판의 극치를 보여준다.후보 추대를 둘러싸고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집안 싸움에서 집권세력의 지리멸렬상을 본다.7명의 신한국당 경선후보들은 흑색선전.비방.살생부.돈살포와 괴문서 소동 등으로 한국정치의 고질병을 드러내 오히려 사회의 무질서를 조장하고 있다.신한국당의 경선 양상은 깨끗한 정책경쟁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를 배반하고 있다.

유권자는 앞뒤가 모두 막혀버린 출구없는 벽에 마주친 느낌이다.많은 유권자들이“표 줄 후보가 없다”고 벌써부터 불평한다.대선이 희망의 계기가 아니라 절망이라는 것이다.특히 여당의 주자(走者)들은 자기 분수를 망각한듯 국민에게 미안한 기색이 조금도 없다.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개혁 실패로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은 책임을 그들이 공유해야 함에도 말이다.웬만한 민주국가라면 권력을 국민에게 반납했을 만한 엄청난 과오를 저지르고도 싸움에 영일없는 주자들의 모습은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표현이 딱 알맞다.

유권자들은 산적한 국가적 난제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주자들의 난투(亂鬪)극에서 겁없는 돈키호테의 희극을 연상한다.차기 대통령 앞에는 엄청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구체제와 신세력.빈부.지역.세대.남북간등 5대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구체제와 신세력간 갈등과 영.호남및 충청간 지역갈등은 정치권이 대선을 통해 반드시 풀어야 할 난제다.빈부.세대간 등의 사회갈등도 국민을 사분오열케 한 한국병이다.정치갈등조차 스스로 풀지 못하는 정치권에 사회갈등 해소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닐까. 더욱이 남북간 이념갈등 해소가 어찌 가능하다고 하겠는가.그래서 통일의 그날은 아득하기만 하다.적어도 5대 갈등의 해소 능력을 지녀야 대통령감이다.대통령은 또 국민의 자유.재산.인권.환경 등을 보호해야 하며 국토를 보전(保全)해야 할 중대한 의무가 있다.대선주자들이 이렇게 막중한 직무를 알고서나 대통령하겠다고 덤비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국가원수직은 결코 면장자리가 아닌데도 말이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장 마리 뱅상 파리대 교수가'대통령 자질론'에서 말했다.'불가능'을 가능한 일로 만들어 해결하는 것이 정치기술이다.그래서 국민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정치가 바로'예술'이 된다고 한다.정치가 공익(公益)보다 사익(私益),국익(國益)보다 당익(黨益),국민의사(國民意思)보다 당수의사(黨首意思)에 복종하면'불가능정치'로 전락하고 만다.한국정치는 지금까지'불가능 정치'의 악순환을 연출해 왔을 뿐이다.

'가능성의 정치'를 보여준 정치 예술가들은 많다.독일의 콜 총리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통일을 완성했고 러시아의 옐친,체코의 하벨,폴란드의 바웬사,헝가리의 안탈 등은 공산주의를 청산하고 민주국가를 건설했다.남아공의 만델라는 흑백 갈등을 해소했고,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국왕은 군사독재에서 민주 이행에 성공했다.우리는 이들처럼 '가능성의 예술'을 보여준 정치 지도자를 갖지 못했다.

대선에서'가능성의 예술가'가 나와야 21세기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유권자는 기필코 낡은 정치를 준엄하게 심판해'가능성의 예술가'를 창출해야 한다.국가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김심(金心)이나 당심(黨心)이 아니라 깨어 있는 국민의 한표다. 주섭일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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