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진보, 때늦은 좌경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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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유럽의 한반도 전문가인 에이던 포스터카터(56) 영국 리즈대 명예교수는 9일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과거에 얽매이고 세계사의 흐름에 뒤떨어진 때늦은 좌경화(late leftism)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워싱턴의 한국경제연구소(KEI) 초청강연에서 '한국의 진보주의, 진정한 개혁인가 반동인가'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했다.

포스터카터 교수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전공하던 1960년대 당시 유럽을 휩쓸던 좌파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북한의 주체사상에 심취했었다.

-한국 진보주의자들의 문제는.

"한국은 제3세계 국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엄청난 성공사례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긍정적 측면을 잘 보지 않는다. 매사를 대립적으로만 몰고 간다. 과거 역사가 이룩한 성과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진보세력의 친일파 과거 청산 주장이 잘못인가.

"한국은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한데 60년 전의 친일문제를 다시 끄집어내고 있다. 이는 진보세력이 기성세력을 공격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언론자유는.

"심각하다. 진보주의자들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보수 신문들을 윽박지르고 탄압하고 있다. 방송은 군사정권 때에 이어 또다시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다."

-진보주의자들이 외교적으로 이중잣대를 갖고 있나.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가혹한 반면 중국과 북한에 대해선 이상하리만치 관대하다. 중국과 북한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인권탄압엔 눈을 감는다. 한국엔 불교 신자가 많은데 달라이 라마에 대한 중국의 탄압에도 무관심하다. 한국에선 여중생 두명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게 큰 문제가 됐다. 이해할 수 있지만 북한에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죽어가는 건 왜 문제삼지 않는가."

-한국 진보주의의 장래를 어떻게 보나.

"진보주의는 한국 사회가 보수주의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배돼온 데 대한 반작용일 수 있다. 한국 사회가 변증법처럼 새로운 합의 단계를 만들어낼지 지켜보자."

-한국에선 분배냐, 성장이냐의 논란이 있다.

"한국은 중국이나 브라질.인도보다 지역적.계층적 양극화 현상이 작은 나라다. 외환위기 이후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있지만 그 정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을 국가적 주요 어젠다로 삼는 것은 난센스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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