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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어린애도 외국인도 눈물 펑펑…세상 바꾸기보다 마음 달래주고 싶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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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독립 다큐 ‘워낭소리’의 기세가 놀랍다. 개봉 20일만에 10만명을 돌파해 국내 독립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상업영화계가 불황으로 신음하는 동안 나온 반가운 소식이다. 지금까지 한국 독립영화 흥행 1위는 2007년 ‘우리 학교’(5만5000명·공동체상영 제외)다.

‘워낭소리’는 평생 땅을 지켜온 팔순 촌부와 그의 동반자인 마흔살 소의 이야기.속도전에 밀려 사라져가는 것들, 노동하는 아버지 세대에 바치는 가슴벅찬 송가다.

경력 15년의 방송사 독립PD 출신인 이충렬(43) 감독은 현장에서 쌓은 내공과 대중적 감각으로 단숨에 관객을 사로잡았다. “방송 PD로서는 실패한 인생”이었지만 제작비 1억원의 첫 극장 영화로 ‘대박’난 데 남다른 감회를 숨기지 않았다(‘워낭소리’는 5만명이 손익분기점이다). “마지막 승부수 같은 영화였는데, 이런 반응은 정말 예상치 못했습니다. 7살짜리 꼬마가 엉엉 울더라구요.”

◆“반성문 쓰듯 만든 영화”=영화는 최악의 상황에서 태어났다. “방송사에서 퇴짜맞은 다큐 테이프들이 방 한가득이고, 벌이가 끊겨 무일푼이고, 결혼도 못하고, 공황장애에 화병까지 찾아왔죠.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치솟았어요. 그때 늙은 아버지와 아버지를 닮은 소 얘기를 떠올렸죠. 반성문을 쓰는 기분으로 작품을 시작했습니다.”

2000년 다큐를 기획하고 전국을 헤맨 끝에, 2005년 영화속 최씨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리고 3년간 촬영했다. “‘6시 내고향’‘전국은 지금’을 찍으면서 알게 된 전국의 이장님, 부녀회장님 소개로 안 가본 곳이 없었어요. 촬영 허가를 받을 때 조건은, 이 분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 거였습니다. 처음 5~6개월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어요. 두 분의 동선, 습성들이 보였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늙은 소의 삼각관계가 눈에 들어왔지요. 자연스래 연출 방식도 정해졌습니다. 가급적 멀리 떨어져서, 먼저 다가가지 말고 기다리면서 찍자. ‘인간극장’식의 들고찍기 대신 풀샷 롱테이크를 택하게 된 거죠.”

물론 어려움도 적잖았다. 처음엔 동영상을 이해못한 할아버지가 카메라만 보면 사진찍는 줄 알고 정물처럼 굳어버리기도 했다. 워낙 대여료가 비싼 HD 카메라라 365일 현장을 다 담지 못했다. “소가 죽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가 카메라를 세팅하는데 소가 풀썩 쓰러지는 겁니다. 이렇게 임팩트가 큰 장면을 몇 개 놓쳤어요. 그땐 아쉬움이 컸지만, 오히려 관객들은 신선하게 받아들이니 전화위복이죠.”

귀가 어두운 할아버지와의 의사소통도 큰 문제였다. 할머니가 ‘중계방송’할 수 밖에 없었고, 다큐의 백미인 할머니의 푸념과 지청구가 그렇게 담겼다.

◆세계를 울린 보편성=‘워낭소리’는 올 선댄스영화제에 출품됐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반응이 뜨거웠다. “미국 관객과 한국 관객이 울고 웃는 지점이 똑같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났다, 죽은 강아지를 떠올리게 해줘서 고맙다, 이런 관객도 많았어요. 인간과 동물의 교감, 관계의 소중함이라는 보편성을 확인한 거죠.”

일부 국내 네티즌들은 드라마타이즈 기법, 편집, 리액션샷을 두고 ‘연출’ ‘조작’논란을 제기하기도 했다. “저는 애초부터 관계의 드라마를 찍으려 했어요. 그저 일어난 일을 시간 순으로 찍는다면 그게 CCTV랑 뭐가 다르겠어요. 관계의 원형질을 훼손하지 않는 한 다큐의 연출방식은 더욱 다양해져야 합니다.”

◆“워낭소리, 유년을 불러오는 주문”=이감독은 전남 영암 출신이다. 농부의 아들이고, 어려서 소를 몰았다. 제목인 ‘워낭소리’도 그에게는 “어린시절을 불러오는 주문”이다. “어린 시절 워낭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면 항상 그 곳에 아버지와 소가 있었어요. 영화내내 작게나마 계속 워낭소리가 들립니다. 영화속 워낭소리는 맥박, 살아있음의 메타포지요.”

감독의 아버지는 지난해 부산영화제때 영화를 보곤 아무 말없이 용돈을 쥐어주셨다고 한다. 최씨 할아버지 내외에게도 DVD를 보여드렸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나오는 몇 장면을 신기한 듯 보다 곧 일하러 나갔고, 할머니는 자신이 노래부르는 대목에서 설움에 겨운 듯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최근 할아버지 내외를 찾아오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두 분이 구경거리가 되지 않게, 그저 영화로만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직은 감독보다 PD라는 호칭이 익숙하다는 그는 “소소한 것들의 위대함, 일상에 관심이 많다”며 “세상을 바꾸는 다큐가 아니라 마음을 바꾸고 달래는 다큐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솔직히 촬영을 시작할 땐 저 소가 제 때 죽어줘야 할 텐데 하는, 사악한 마음도 있었어요. 하지만 소의 해에 맞춰 개봉하고 좋은 반응까지 얻으니 모든 게 하늘의 소님이 도와주신 것 아닌가 감사합니다.(웃음)”

글=양성희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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