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엿보기>4. '뒷처리' 본질은 같아도 형식은 천양지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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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뒷간 사치의 압권은 역시 중국 진나라의 석숭(石崇)이다.석숭은 촛불로 밥을 지어

먹은 전설적 섭생으로도 유명하지만,

마지막 처리에도 결코 호사가의 풍모를 잃지 않았다.뒷간 행차시,수십 명의

여종들이 향불을 피워들고 입시했다가 일을 마치면 곧바로 새 옷으로 갈아입힌 일등.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압권은 파리 날개를 뒷간 바닥에 깔아둔 것이다.

몹쓸 것이 낙하하면 그 바람에 파리 날개가 훌쩍 날아올랐다 배설물 위에 나풀나풀 내려앉도록 하기 위함임은 말하나 마나다.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필사적으로 똥무덤과 그 냄새를 감추려 궁리를 거듭해 왔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절간에서는

가랑잎으로 그것을 덮었고,반가에서는 쌀겨를 이용했다.일본의 경우도 쌀겨 얘기가 나온다.이에 대한 이치가와의 주장-“똥오줌이 튀어오르지도 않거니와 일을 볼 때 상스러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이처럼 쌀겨를 쓰는 방법은 오랜 시일이 걸려서 이룩된 뒷간 문화의 세련미다.” 귀족들은 자신들은 후문조차 아랫것들의 그것보다 훨씬 민감하다고 믿었고,따라서 밑을 닦을 때도 민초들과는 달리 보들보들한 비단조각이나 거위 목털을 이용했다.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 똥은 요크대학의 화석학자 앤드루 존스가 발굴한 1천여년전 바이킹 거주자의 것으로,4천만원 상당의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선 할말을 잊는다.

잠시 일화 한토막-.윈스턴 처칠이 수상으로 당선된 직후,수상 관저로 향하는 리무진에서의 일이다.

부인은 처칠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외쳤다.“여보!이게 꿈이유,생시유?나도 이제 드디어'레이디스 룸'을 사용할 수 있게 됐구려!”처칠의 부인을 감동으로

몰아넣은 레이디스 룸!도대체 무엇일까. 단도직입,정답부터 밝히면 화장실이다.아니,

정확히는 보통 화장실이 아니라 작위를 지닌

숙녀들을 위한 화장실을

가리킨다(우리나라 여성들은 정말 행복하다.대부분의 공중화장실에'레이디스'라는 표지가 붙어 있을 뿐더러 이용에 아무런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처칠 부부의 이 미확인 대화는 극히

최근까지 유럽 제국에는 귀족용 화장실과 평민용 화장실이 구분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따지고 보면 유럽뿐이 아니다.

심지어 자유와 평등의 상징이라는 미국에서조차 상류층용 화장실과 서민용 화장실은 구분되어 있었고,이름조차 상류층의 그것은 토일렛(화장실),서민의 그것은 래버터리(lavatory)로 갈랐다.그렇다면 21세기를 목전에 둔 요즘의 화장실 사정은 어떤가.적어도 표면상으론 상류계층의 화장실과 보통사람의 그것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최근 화장실로 승부를 거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화장실은 그 기업의 얼굴이라며….그런가 하면 특급호텔 객실들은 초호화판 화장실을 연출해 놓고 있다.화려한 비데는 기본.바닥은 수입 대리석.바닥의 금속제품은 대개 18K 금장으로 새겨져 있다.그래서 촌스러운 손님들은 곧잘 화장실을 그냥 화장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

또 대구지역 모호텔 나이트클럽은 화장실 치장에만 수억원의 돈을 쏟아부었다는 얘기도 들린다.숫제 돈으로 도배한 화장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도대체 오늘날 꿈의 화장실을 이용하는 신귀족은 누구일까. 손일락 청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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