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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학교폭력 유기적 접근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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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위험수위를 넘은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는 학교폭력의 실상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몇푼 안되는 생활보조금의 일부를 정기적으로 갈취당하던 생활보호대상 학생이 자퇴하는가 하면,특별한 이유없이 선배들로부터 집단구타당한 여중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말을 듣지 않는다며 고교생들이 급우를 저수지에 빠뜨려 숨지게 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최근 3개월동안 학교폭력에 의해 자살하거나 피살된 학생이 보도된 것만 7건이며,공개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20건에 가깝다.학교폭력이 더 이상 단순폭행이나 금품갈취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살인'의 수위에 이르렀다는 것을 최근의 사례가 말해주고 있다.우발적인 상태를 넘어 조직화.흉포화되고 있는 것이다.전국 중.고교에는 일본만화에서 이름을 따고 조직운영이 성인조직에 버금가는'일진회'라는 폭력서클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정부는 관계장관 대책회의까지 갖는등 대책마련에 부산하다.경찰은 그동안 성인폭력조직에만 적용하던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학생폭력서클에도 적용하는등 강력한 단속활동을 펴고 있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이같은 대응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학부모의 92%,교사의 82%가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최근 현장교육개혁연구위원회의 조사결과는 학교폭력이 얼마나 일반화돼 있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철저한 원인분석과 다각적인 대책 없이는 아무리 학교폭력을 해결한다고 해도 미봉책이 되고 말 것이다.학교폭력이 오늘과 같은 상황에 이른 것도 그동안 우리사회가 간헐적인 위험신호에 둔감해 대책마련을 소홀히 해 온 때문이다.

이제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이를 위해서는 학교폭력의 원인은 무엇이며,그 실태는 어떤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학교폭력은 지금 일종의 또래집단 문화처럼 일상화되고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이는 우리 아이들의 조숙화(早熟化)와 주변환경에 의해 심리적인 공격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단순히 입시위주의 교육이 빚어내는 병폐라고 잘라 말할 수 없는 실정이다.말하자면 학교폭력은 단순한 교육현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공동의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폭력에 대한 대책은 종합적이면서도 지속적이어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또 그 방안은 인식의 전환,환경의 개선,단속등 제도적 장치의 완비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교직자의 문제인식과 각성이 선행돼야 한다.학생폭력의 3건중 2건은 운동장.화장실.교실등 교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그런데도 정작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학교측은 이를 숨기거나 축소한채 음성적인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그래서 번번이 핵심을 비켜가고 만다.가정이나 사회탓으로 돌리기 전에 교사들부터 학교폭력은 내 문제라는 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사회적인 환경을 검토하는 일이다.가장 우려되는 것이 매스컴의 프로그램에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이는 폭력의 위험성과 죄의식을 둔감하게 하는 중요한 환경이 되고 있다.학교폭력에 대한 보도 또한 심층적인 자세가 아쉽다.

우리는 단순히 충격성 전달에 머무르고 말지만,일본의 경우는 학생의 자살사건이 발생하면 가족.교사.친구.가해학생.시민.심리학자.교육전문가등을 동원해 심층진단하고 대책을 세우는 노력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법당국의 단속을 포함해 정부가 결정한 정책을 보다 지속적이고 일관성있게 추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그동안의 청소년대책은 발표때만 그럴 듯하고 정권이나 주무장관이 바뀌면 유야무야된 경우가 많았다.

학교폭력은 단기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이제는 사회전체가 청소년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고 실천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종기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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