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황세희의 몸&마음] 사이코패스 치료가 어려운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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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일곱 명의 여성을 연쇄살해한 강호순. 냉정한 계획 살인을 반복했고, 구속된 지금도 구치소에서 밥 잘 먹고 잠 잘 자며, 태연하게 범죄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도대체 그의 뇌는 어떤 논리로 작동하는 것일까.

먼저 그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다. 사이코패스에겐 의리나 양심이 없다. 남의 고통도 아랑곳하지 않고 죄의식이 없어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다. 물론 반성도 안 한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일엔 열심이라 범행은 뒤탈 없도록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실행한다.

의학적으로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다. 타고난 심성이 고약하고 냉혹한 사람들인데 잘못된 훈육도 한몫한다. 따라서 사이코패스를 예방하려면 우선 천성은 차치하고라도 출생 후 도덕적 기준이 정립되는 12세 이전까지 싸움·규칙 위반·도벽·거짓말 등을 철저히 금하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일단 성인으로 자란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는 고치기 힘들다. 정신과 전문의도 의사 치료보다는 교도소가 해결책이란 절망적인 말을 한다.

정신과의사가 정신이 이상한 사이코패스 치료를 포기한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와 사이코(psychosis=정신병)의 차이를 알면 납득이 간다.

흔히 ‘미쳤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사이코는 생각이 지리멸렬하고 엉뚱한 행동을 한다. 근거 없이 ‘나를 미워한다’거나 ‘국정원이 감시한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또 가족의 죽음, 집안의 경사 등의 상황에서도 감정 표현이 없다.

이 모든 괴이한 행동의 원인은 어느 순간부터 뇌 기능이 고장나 병든 탓이다. 따라서 약물로 뇌 기능을 고쳐주면 생각과 행동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간혹 사이코가 흉악 범죄를 잘 저지른다는 오해를 사는 이유는 신문·방송·영화 등에서 종종 그런 식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표적인 정신병인 정신분열병만 해도 환자는 겁이 많고 사람을 피해 혼자 있으려 한다. 자연 범죄율도 일반인보다 낮다. 물론 이들도 범죄를 저지르는데 주로 ‘저사람이 나를 죽이려 한다’는 망상에 빠져 나를 해치기 전에 먼저 공격하자는 차원에서 일어난다. 또 약물치료로 제 정신이 돌아오면 죄책감에 시달린다.

반면 사이코패스는 완전 범죄를 계획할 정도로 생각이 논리적이다. 그들과 대화하고 어울려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긴 힘들다. 물론 교육을 못 받은 사이코패스는 쉽게 화 내고 공격적으로 돌변한다. 지능이 좋은 사이코패스는 목적 달성을 위해 얌전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줄도 안다. 그래서 주변의 신임을 잘 얻는다. 말 주변이 좋을 경우 능숙하게 남을 속인다.

실제 범죄를 저지른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중에는 연쇄살인범보다는 반복적인 사기·폭력·강간·절도 등의 범죄자가 더 많다. 물론 고차원적인 지능 범죄로 법망을 피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인터넷에서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서로를 사이코패스로 비난하는 사건이 화제거리다.

남(국민)의 고통은 아랑곳 안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일에는 정열적인 사람들, 죄의식 없이 태연하게 거짓말을 반복하고 싸움과 규칙 위반에 달인인 그들 중에 진짜 반사회적 인격자는 얼마나 될까. 많은 국민이 이를 궁금해하는 듯하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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