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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보석함>20.끝. 희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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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이 풍진(風塵)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푸른 하늘 밝은 달아래 곰곰히 생각하니/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다//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酒色雜技)에 침몰하니/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국내 대중가요의'고전'으로 통하는 이 노래의 작곡자는 미국인 제레미 인갈스.그가 1850년 영국 춤곡을 바탕으로 새롭게 작곡할 때만해도'우리가 집으로 돌아올 때'라는 제목의 찬송가였다.

그후 이 노래는 일본으로 전래되면서'새하얀 후지산의 뿌리'(眞白き富士の根)라는 진혼가로 바뀐다.1910년께 일본에서는 여학생 12명이 강을 건너다 배가 뒤집혀 몰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이때 비명에 간 꽃다운 소녀들을 추모하기 위해 미스미 스즈코(三角錫子)라는 여교사가 이 곡에 일본인 취향의 시를 붙임으로써 이 노래는 일본 전역으로 퍼졌다.

국내에선 1920년대 망토 차림에 모자를 쓰고 바이올린을 켜면서 창가집 악보를 파는 악사가 등장,이 노래를 연주하면서 이 노래는 대중가요로 탈바꿈한다.당시 이 곡은'오동나무 창가집'에는'탕자경계가'(蕩子警戒歌),'신유행창가집'에는'탕자자탄가'(蕩子自歎歌)라는 각각 다른 제목으로 수록됐으나 가사는 모두 지금과 같다.22년에 발간된'최신중등창가집'에는'일요일가'(日曜日歌)로,34년에 출간된'방언찬미가'에는'금주(禁酒)창가'라는 제목으로 가사가 바뀌어 실리기도 했다.

'엿새동안에 곤(困)한 몸이 오늘 일요(日曜)를 당하고 보니/지나간 일은 꿈결 같고 상쾌한 몸 뿐일세/이른 아침 조반후에 동무집으로 찾아를 가서/손을 이끌고 썩나서니 가는 곳 정처없다'(일요일가)'죄악의 길로 가는 동포 너의 살길이 어데인가/술만 먹고 춤만 추면 희망이 족할가/어린 처자는 주린 배를 움켜 쥐고 앉았으니/저 생명 가련하다 술마시는 자여'(금주창가)'희망가'라는 제목은 1920년께 민요가수 박채선(朴彩仙).이류색(李柳色)이 무반주 2중창으로 녹음할 때 붙여진 제목이다.이어서 25년 민요가수 김산월(金山月)이 음반으로 취입했으나 대중을 파고들기는 1930년 국내 최초의 대중가수 채규엽(蔡奎燁)의 레코딩을 통해서였다. 일제시대 망국의 한과 실의를 달래면서 각성을 촉구했던 이 노래는 처음엔 연극 막간에 불렸다.현실도피나 퇴폐성을 나무라는 설교조의 가사 때문에 서민들 사이에서는'절망가''실망가'로 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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