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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청론>교육만은 '아날로그式'으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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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우리나라 경제가 흔들리는 중에도 사교육비로 지출되는 돈이 무려 연간 10조원 정도에 이르렀다고 한다.특히 서울에서 고교생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그 수입의 50% 가까이를 과외비로 쓴다고 하니 그 경제적,사회적 폐해가 분명 도를 넘은 것은 확실하다. 정부 당국도 과외를 전면 금지하는 정책에서 이제는 불법과외라는 것을 새로 규정지어 제한적 금지를 하는 한편 대학입시도 학교별 자체 시험에서 수능시험으로,다시 수능을 보되 선발은 자율로 하는 등 여러 방법을 다 써보고 있지만 그 효과는 별무신통인 듯 싶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개인에 대한 판단을 너무 O,X식의'디지털적'방법으로 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요즘은 디지털 경제학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는 등 디지털이라면 아날로그에 비해 신기술의 표본이요 신세대의 상징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판단,특히 사람에 대한 우열을 가리는 것조차 O,X식으로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서울대 입학시험에서의 0.1점,사법고시에서의 0.1점은 곧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엄연한 장벽으로 존재한다.물론'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다'라는 항변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합격이란 영역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불합격 영역의 사람보다는 적어도 객관적인 대우와 혜택을 더많이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지금 우리의 O,X식'디지털 교육시스템'속에서 우리도 스필버그나 빌 게이츠 같은 세계를 움직일 인물을 배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누구도'가능하다'라고 선뜻 얘기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지금은 분명 디지털 시대요 정보의 시대다.인터넷에는 수천만 권의 장서와 전세계의 무한한 정보가 주인 없이 돌아다니고 있다.그러나 다른 점은 외국은 그 정보를 컴퓨터에 보관하는 반면 우리는 그 많은 정보를 머리속에 넣는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다.아무리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도 머리로만 답변을 쓴다면 인터넷을 오가며 다양한 답변을 작성하는'공부를 좀 못하는'학생을 당해낼 수 있을까.주판을 잘 놓으면 한국은행에 입사할 수 있던 시대가 지난 것처럼 많이 외워서 인생에서 성공하는 시대도 마감되어가고 있다.

몇년 안에'컴퓨터 판사','컴퓨터 의사'가 등장한다는데 우리는 아직도 일제시대의 잔재인 O,X식 교육에 우리 다음 세대를 몰아넣어야 할 것인가. 싱가포르의 고촉동 총리는 교육에 대한 국가비전으로“생각하는 학교(Thinking School),배우는 국가(Learning Nation)”를 주장하며 학교에서는 생각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국가는 모든 국민에 지속적인 교육을 시킬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우리도 한정된 지식의 주입 상태를 갖고 합격,불합격을 판단하는 디지털식 교육시스템에서 인터넷으로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하는 아날로그 교육 시스템으로 바꾸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요즘 들어 사이버대학(Cyber University)이야기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이는 교육을 PC를 동원한 원격방식으로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네트워크 속에 있는 대학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 디지털 대학은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환영하되 절대 O,X및 합격,불합격의 디지털 인생을 강요하지 않는다.이와 관련해 교육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가진 대선주자를 기대해보는 마음이다.

글=이상철 한국통신프리텔사장

<사진설명>

이상철 한국통신프리텔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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