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열며>삼베 옷감의 부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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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며칠전 연쇄 방화사건이 보도됐다.쓰레기 더미의 불이 옮겨붙어 차량이 불탄 곳도 있고,종이상자의 불 때문에 재산 피해가 난 곳도 있다.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불만은 방화로만 나타나지 않는다.어떤 이는 승용차를 칼로 긁기도 하고 다른 이는 송곳으로 타이어를 찍기도 한다.한 에이즈 환자는 일부러 여러 사람에게 에이즈 균을 퍼뜨렸다는 보도도 있었다.세상에는 저들의 악행만 있을까.아니다.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세상에 대해 화풀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을 수 있다.인간의 본성에는 선과 함께 악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자신이 가진 진짜 보석은 못 보고 남이 흔들어 대는 인조품을 향해 침을 흘리기 쉽기 때문이다.

感謝로 善이 깨어나게 악을 없앨 수 있을까.한마디로 없다.석가나 예수와 같은 성인에게도 제바달다나 유다와 같은 배반자가 있었다.예전의 공산주의나 북한의 체제아래서는 그와 같은 방화가 없을지 모른다.그러나 사람의 불만은 어떻게든 스며나오게 돼있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무너졌고 북한이 굶주리게 됐지 않은가.나라의 법은 방화범류의 저들을 엄히 다스려야 하겠지만,우리는 저들 속에 있는 악을 잠재우고 선이 깨어나게 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내가 바다에서 작은 돛단배를 즐긴다고 치자.어두워지면 바닷가에 배를 두고 숙소로 돌아와야 한다.이때 나는 사람들이 배를 만지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돛대.돛폭.방향타.노 등과 연결된 어느 부속 하나만 잘못돼도 그 배는 바다에 다시 들어가지 못한다.다음날 아침 바다에 나가서 아무도 배를 건드리지 않은 것을 알게 되면 나는 감사할 수밖에 없다.심술이 없는 이에게는 아예 배를 만질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 대해,심술이 있는 이에게는 그것을 부리지 않은 점에 대해 감사한다.

석가는 제자들에게 항상 주위에 감사하라고 가르쳤다.한 제자가 사람들이

불교를 비방하면 어찌 하느냐고 묻는다.석가는 욕설하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고 한다.제자는 욕설하면 어떡하느냐고 묻는다.석가는 때리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고 한다.제자는 때리면 어떡하느냐고 묻는다.석가는 죽이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고 한다.제자는 죽이면 어떡하느냐고 묻는다.석가는

죽음으로 전생의 업(業)을 녹일 수 있게 해 준 것을 감사하라고 한다.

우리는 어떤 난관을 통과하거나 행운을 얻었을 때 하느님이나 부처님에게

감사한다.이것은 좋은 일이다.문제는 그 절대자를 현장에서 찾아보고

감사하려고 하지 않고 멀리 있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한 인기스타가

있다고 치자.그는 자기의 능력을 개발하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게 해준

절대자에게 감사할 것이다.그러나 그의 절대자는 바로 자기를 스타로

만들어준 팬들 속에 있다.높은 하늘 위에 있는 절대자를 그리면서 팬들을

함부로 생각하고 방자하게 행동하면 그의 인기는 바로 끝나게 돼 있다.팬

무서운 줄 모르다가 몰락한 스타들이 얼마나 많은가.권력을 잡은

정치인,명성을 얻은 예술가,돈을 많이 번 재산가 등도 마찬가지다.자기의

성취를 만들어준 현장에서 절대자를 찾고 감사해야 한다.

현장서 절대자 찾아야 한 수행승이 선사에게“무엇이 부처입니까”하고

물었다.더운 여름에 삼베옷을 입고 있던

선사는“마삼근(麻三斤)”,즉'마포(麻布)세근이니라'하고 대답했다.몸을 덥지

않게 해주는 삼베 옷감을 부처로 보고 그것에 감사한 것이다.

어떤 이는 우리의 감사가 방화범의 기를 더 돋워줄 것이 아니냐고 물을지

모른다.그렇지 않다.생각해보라.우리가 그들 속에 있는 불만과 그것의 강한

폭발력을 인정하고 그것을 잘 간수하는 점에 대해 감사한다면 그들도 마음이

가라앉을 것이 아닌가.그리고 그들은 짐승이나 외계물이 아니다.그들도

언젠가 우리처럼 현장에서 절대자를 찾고 감사할 줄 알게 될'인간'인 것이다.

석지명 청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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