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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 정치] 대변인, 정당의 ‘꽃’에서 ‘3D’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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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김영삼(YS), 김대중(DJ), 노무현, 손학규, 정동영…’.

이들의 공통점은. “대통령 후보”라고 답한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박희태, 이인제, 홍사덕, 박지원, 나경원, 전여옥…’.

정치인의 이력에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이렇게 대답할 게다. “정당 대변인.”

대변인이 정당 정치의 꽃인 시대가 있었다. 3김의 보스 정치 시절이 그랬다. 당시 대변인의 역할은 두 가지였다. 홍보와 비판이었다. 이견이 혼재한 당내 상황이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재주껏 전달하면서도 상대 당이 가장 아픈 부분을 공격하는 저격수가 돼야 했다. 박희태·박지원 두 사람이 명 대변인 반열에 오른 건 이런 자질 때문이었다.

상대 당을 쩔쩔매게 한 재주로는 김철 신한국당 대변인을 빼놓을 수 없다. 1996년 자민련 김종필(JP) 총재의 대권 계획을 담은 ‘파워 JP 플랜’이란 보고서가 공개됐다. 그러자 김 대변인 왈. “새로 나온 휘발유 이름인 줄 알았다”. 상대 당 보스의 대선 프로그램을 한방에 희화화시킨 이 논평에 분노한 자민련 대변인은 “어제 마신 폭탄주가 아직 덜 깼느냐”며 당시로선 금기인 대변인 직접 공격을 감행했다. 이때 대변인의 자질로는 촌철살인의 논평과 친화력을 으뜸으로 쳤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대변인에게 요구되는 자질도 달라졌다. 2000년대로 접어들며 이미지가 한층 중요해졌다. 남녀 공동대변인이 임명돼 ‘투톱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남경필-조윤선(2002년), 열린우리당 임종석-김현미(2004년) 조합이 효시다. 정당 기능 중 국회 대책이 중요해지면서 원내대변인의 역할이 커지는 것도 새 흐름이다. 보스 정치의 퇴조와 온라인 미디어의 발달은 대변인의 역할까지 변모시키고 있다. 주요 정치인의 입장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면서 대변인이 누려온 중개와 전달 기능은 왜소해지고 있다. 대표끼리, 원내대표끼리, 정책위의장끼리 직접 맞붙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매체의 출현으로 대변인이 낮밤으로 ‘관리’해야 할 대상은 오히려 늘었다. 그래서 요즘 대변인들은 “낭만은 사라진 여의도의 3D 업종”이라고 호소한다. 민주당은 지금 대변인 교체기다. 그동안 여당이 껄끄러워하는 저격수 역할을 해온 최재성(남양주갑) 대변인이 과로를 호소한 때문이다. 후임엔 노영민(청주흥덕을) 의원이 내정됐다. 한나라당은 1월 쟁점법안 처리가 무산된 뒤 자진해서 물러난 차명진(부천소사) 대변인의 후임을 공석으로 남겨두고 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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