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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막이 사라져 ‘한국판 금융빅뱅’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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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1970년대 이후 국제 금융시장에서 영국 런던의 위상은 끝없이 추락했다. 그러자 영국 정부가 결단을 내렸다. 86년 10월 ▶수수료 자유화 ▶진입장벽 완화 ▶금융업종 간 칸막이 폐지를 골자로 한 대개혁을 단행했다. 규제 개혁 이후 수많은 금융회사가 생겼지만 연이은 인수합병(M&A)으로 강한 자만 살아 남았다. ‘금융 빅뱅(대폭발)’이 이뤄진 것이다. 그 결과 90년대 중반 런던은 국제 금융시장의 강자로 복귀했다.

자본시장통합법이 추구하는 것도 ‘한국판 금융 빅뱅’이다. 제도적 장치는 마련됐다. 진입 문턱이 크게 낮아져 증권 등 금융투자회사를 설립하기가 쉬워졌다.

주식을 중개하는 회사(투자중개업)의 경우 자기자본이 현행 3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아진다. 기관투자가 등 전문 투자자만을 대상으로 주식 거래를 중개할 경우 5억원으로도 회사 설립이 가능하다. 100억원인 자산운용사(집합투자업)의 자기자본도 80억원으로 낮아지고, 주식이나 채권만 투자하는 자산운용사는 40억원으로도 만들 수 있다.

증권·자산운용·선물 등 업종별 영역을 제한했던 칸막이도 없어진다. 예컨대 증권 중개업자가 일정 자기자본을 늘린 뒤 선물·옵션 등 장내 파생상품 중개 업무를 추가하는 식으로 업무 영역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기존의 증권사가 자산운용·종합금융·신탁 업무도 할 수 있다.

금융투자회사가 은행처럼 돈을 직접 빌려주거나 지급보증을 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이 같은 업무가 금지돼 증권사가 주도하는 M&A 때도 돈을 댈 은행의 참여가 필수적이었다. 골드먼삭스와 같은 대형 투자은행(IB)을 육성하기 위한 취지다.

다양한 상품의 개발도 가능해졌다. 지금까지는 ‘이런 상품을 된다’로 규정해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 등 신종 상품이 출현할 때마다 법을 바꿔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상품은 안 된다’로 바뀌기 때문에 능력만 된다면 얼마든지 다양한 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이 같은 제도만 갖추면 단기간에 영국식 금융 빅뱅이 한국에서도 일어나는 걸까. 또 우리나라에도 골드먼삭스와 같은 대형 IB가 탄생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이에 다소 유보적이다. 한국증권연구원 신보성 금융투자산업실장은 “금융시장 여건이 좋지 않은데다 국내 금융투자회사의 규모가 글로벌 기준에 크게 못 미쳐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글로벌 IB가 나타나기까진 최소한 10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형 증권사들도 선물업·자산운용업 등의 신규 진출을 계획하고 있지만 서로 눈치만 보며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의 현실적 문제는 민주당의 반대로 겸영 업무의 인가 요건이 당초 법안보다 대폭 강화된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증권 관계자는 “막판에 법이 바뀌면서 신규 사업 진출 요건이 까다로워져 계획했던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됐다”며 “대형 IB를 육성하겠다는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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