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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 시시각각

‘물의 남자’와 불의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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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화재·폭발·추락·침몰·충돌은 대부분 인간이 만들어낸다. 이런 사고에 대통령의 책임은 거의 없다. 그러나 대형 사고가 이어지면 불안한 민심은 슬쩍 대통령을 쳐다보게 된다. 최고지도자는 태생적으로 그런 무한책임을 지니게 된다. 김영삼(YS) 대통령은 대형 사고의 유령에 시달려야 했다. 유령은 처음 땅에 나타나더니 하늘로 올라갔다. 바다에도 가더니 이어 강과 호수에 출몰했다. 지하로도 내려갔으며 나중엔 백화점 하나를 무너뜨려 버렸다.

YS 취임 한 달이 갓 지난 1993년 3월 말 부산 구포역을 향하던 기차가 웅덩이에 처박히면서 탈선했다. 무려 70여 명이 죽었다. 4개월 뒤인 7월 목포에서 아시아나 여객기가 떨어져 66명이 사망했다. 석 달 후인 10월 서해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하면서 292명이 익사했다. 해가 바뀌어도 유령은 사라지지 않았다. 94년 10월 21일 한강에 있는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렸다. 사망자는 32명이었다. 3일 후엔 충북 충주호 유람선에 불이 나 30명 가까이 죽었다. 이듬해엔 대구 지하철 공사장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했다. 101명 사망했다. 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때는 500여 명이나 죽었다. 유령의 광기(狂氣)가 클라이맥스에 이른 것이다.

유령은 유령이고 YS는 YS였다. YS는 칼국수를 먹으며 개혁을 밀어붙였다. 군부 사조직 하나회를 해체하고 12·12 군사반란 사건을 재판에 회부했다. 군 출신 대통령들의 거액 비자금을 파헤치고 공직자가 재산을 공개하도록 했다. 금융실명제를 도입해 부패의 길에 커다란 쐐기를 박았다. 대형 사고 시리즈는 어쩌면 사회개혁의 폭풍을 예고했던 것인지 모른다. 개혁이 찬란하게 끝났다면 유령은 잊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권 5년의 격동은 97년 말 외환위기로 끝났다.

불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일어난다. 99년은 김대중(DJ) 대통령의 2년차였다. 그해 6월 경기도 화성군 청소년수련원 씨랜드에 불이 나 유치원생과 인솔교사 19명이 숨졌다. DJ가 석양으로 가고 노무현 대통령의 새벽이 열리던 2003년 2월엔 정신질환자가 대구 지하철에 불을 질렀다. 192명이 죽었다. 다른 사고처럼 씨랜드와 대구 지하철의 참사도 충격적이어서 한국인의 가슴에 지독한 화상을 남겼다.

2008년 1월은 노무현 대통령이 석양으로 가고 이명박(MB) 대통령의 새벽이 열리던 때였다. 그 무렵 이천의 냉동창고에서 불이 나 40명이 죽었다. 그해 12월엔 같은 지역의 다른 물류창고에서 또 큰불이 났다. 화재 사고야 늘 있는 것이므로 여기까지는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러나 MB에게는 다른 불이 나고 있다. 지난해 여름 MB는 촛불에 데었다. 촛불은 수천, 수만 개가 되면 씨랜드나 냉동창고의 불보다 훨씬 뜨겁다. MB가 자신있게 맞섰더라면 화기(火氣)는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MB가 시청앞과 태평로를 내어주니 화기가 청와대 뒷산까지 이른 것이다. 같은 촛불이 노무현은 대통령으로 만들고 MB에게는 화상을 남겼다.

MB는 기본적으로 ‘물의 남자’다. MB의 운과 의지는 상당 부분 치수(治水)에 있다. MB는 죽어 있는 청계천을 되살려 대통령이 되었고 대통령이 돼서는 대운하에 집착했다. 대운하가 죽는가 싶더니 경제위기를 맞아 대신 4대 강이 살아나려 하고 있다.

그런 물의 남자가 다시 불의 도전을 받고 있다. 용산의 불길은 언제 대규모 촛불로 인화될지 모른다. MB의 물줄기는 청계천 때보다 많이 약해져 있다. MB는 같은 당 내의 다른 물길도 합치지 못하고서 당 밖의 거센 물길과 대척하고 있다. 물은 생명이자 포용일 것이다. MB는 청계천을 살렸던 것처럼 화합과 포용, 그리고 원칙으로 사회의 물길을 뚫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정치력과 포용력으로 다른 물길들을 합쳐 자신의 물줄기를 키울 때 불의 도전을 뿌리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MB의 치수(治水) 정치다.

김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