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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프라를세우자>34. 해외문화원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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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년 가깝도록 해외문화원이 한 군데도 증설되지 않은 나라.올림픽까지 치렀고 월드컵 개최를 눈앞에 두고 있는 나라의 문화전파 노력이 이 정도라면 세계가 웃을 노릇이다.

'21세기 경쟁력… 문화인프라를 세우자'라는 이 시리즈는 21세기 문화전쟁시대에는 문화야말로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최고의 무기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이제 이 시리즈를 마감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넓은 창구까지 꽉 틀어막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보화시대에 문화가 흐르는 통로야 실로 다양하겠지만 그런 흐름에서 우리는 거의 일방적으로 수용만 하고 있는게 현실이다.그런 만큼 문화 전파의 전초기지인 해외문화원이 제 역할을 찾도록 배려하는 일은 더욱 시급하다.

우리나라의 해외문화원은 일본의 도쿄,미국의 로스앤젤레스와 뉴욕,프랑스의 파리등 4곳에 지나지 않는다.이중 도쿄와 뉴욕문화원은 임차 공간이다.이외에 공관에 문화체육부 소속 문화관이 파견된 지역도 겨우 베이징과 런던 두곳밖에 없다.낯뜨거운 실정이다.해외문화원 4곳도 모두 79,80년 2년 사이에 설치됐다.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해외문화원 증설이 한군데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이다.문화복지국가니 세계화니 하는 구호도 한낱 공염불이었음이 입증된 셈이다.

지난 89년 공산권을 겨냥한 전초기지로 오스트리아 빈에 문화원 건립이 논의된데 이어 95년말에는 베이징.모스크바.로마 등지도 거론됐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진척이 없다.

우리나라가 국제경쟁에서 어깨를 겨뤄야 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들은 어떤가.94년말 현재 미국이 1백27개국에 2백40개소,프랑스가 1백5개국에 1백32개소,영국이 1백8개국에 2백28개소,독일이 68개국에 1백52개소의 해외 문화원을 각각 두고 있다.일본도 42개국 43개소며 경제력이 우리보다 뒤지는 중국까지도 무려 94개 국가에 이른다.일본의 경우 최근 프랑스 파리에 에펠탑이 마주 보이고 센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연건평 3천여평의 대규모 문화원을 열고 유럽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서 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우리나라 해외문화원은 모두 네곳의 임차공간까지 합해봐야 2천평에 지나지 않는다.

해외 문화원에 근무하는 종사자들의 수치는 더 형편없다.우리나라가 모두 12명인 반면 미국은 자그마치 9천2백여명,프랑스가 4천7백여명,일본이 4백여명이며 중국도 5백40명에 달한다.문화전파 노력의 실질적인 내용을 떠나 수적으로 너무나 열세다.'전통문화예술의 소개와 국제문화교류증진'이라는 문화원 설치목적이 부끄러울 지경이다.이런 상황에서 해외문화원의 고유업무인 ▶한국어 보급▶한국관련자료 제공▶우리 문화재 및 미술품 전시▶영화.국악 등 한국문화예술 발표▶문화산업 관련 상담 등이 원만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동안 지겨울 정도로 지적됐던 예산문제도 마찬가지다.올해 4개 해외문화원의 총예산은 고작 70억원.문예진흥기금과 체육진흥기금의 할당분까지 합한 금액이다.그러다보니 한국관계 책이나 비디오를 빌려주는 정도의 역할에서 끝난다.이 예산도 문민정부 출범후 해외문화원이 공보처에서 문화체육부로 이관되던 95년 예산이 23억이었던데 비하면 그래도 크게 늘어난 것이다.다른 문화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 일본의 해외문화홍보예산도 이미 지난 89년 1천억원을 넘어섰다.

문화전파의 첨병 역할을 맡고 있는 문화담당 관리들의 관리체계와 자질에도 개선돼야 할 점이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화담당 관리의 관리체계가 3원화되어 있다.해외문화원이 설치된 곳에는 문화체육부 소속의 문화관이 파견된다.중국.영국등 32개국에서는 공보처 소속의 공보원(公報院)이나 대사관에 근무하는 공보처 소속의 공보관이 문화관의 역할을 대신한다.그리고 문화관과 공보관 둘다 주재하지 않는 나라의 대외 문화창구 역할은 외무부 직원이 담당한다.

이런 현실에서는 해외문화원의 고유업무와 관련이 깊은 국어연구원.중앙도서관.국립국악원등 문화체육부 산하 국내 관련단체와의 효율적이고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기대하기 어렵다.이런 불합리한 관리체계는 곧 문화담당 관리들의 전문성 결여로 이어진다.문화체육부 소속의 문화관은 어느 정도 문화마인드를 갖췄다고 치자.그렇지만 외무부 소속 직원이나 문화보다는 국가체제 홍보에 보다 익숙할 공보관에게 문화적 전문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화체육부내에서도 문화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같은 수준에서는 해외문화원 증설은 기대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제 국민 모두가 정부의 해외 문화전파 노력까지도 감시해야 할 때다.문화체육부등에서 해마다 내놓는 사업계획을 중요시할 것이 아니라 계획의 실천 여부를 따져야 한다.

지난 93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수행원에 여배우 소피 마르소와 조각가 발다치니등이 포함돼 있다고 해 놀랐던 적이 있다.그때 우리는 놀라기만 했지 대통령의 각국 방문도 치열한 문화전쟁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우리한테도 그런 문화적 인식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정명진 기자

<사진설명>

▲우리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창구인 해외문화원의 활성화가

시급하다.문화원 공간을 따지면 도쿄.로스앤젤레스.뉴욕.파리 등 4곳을 모두

합쳐도 파리 일본문화원의 반을 조금 넘을 뿐이다.사진은 도쿄 미나토쿠에

자리잡은 한국문화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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