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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게 생긴 얼굴이 오히려 범행 무기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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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연쇄살인범 강호순(사진)의 마스크와 모자가 벗겨졌다. ‘얼굴 없는 범인’의 얼굴이 공개된 것이다.

31일 중앙일보 조인스닷컴에는 강호순의 얼굴을 둘러싸고 논쟁이 달아올랐다. “반반하다” “잘생긴 호남형이다” “생긴 거 멀쩡하고 동안”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뭐가 잘생겼느냐”는 반박도 잇따랐다. 최소 “연쇄살인범처럼은 안 생겼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과연 ‘범죄형 얼굴’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사실 오래전부터 학계에선 ‘얼굴’이 범죄 연구의 한 주제였다.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이창무 교수는 19세기 이탈리아의 법의학자 롬브로소(Lombroso)의 사례를 소개했다. 롬브로소는 수천 명의 교도소 수감자의 외모를 분석해 선천적으로 범죄자형 외모가 따로 있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큰 턱, 강한 턱 선, 튀어 나온 이마, 긴 팔, 날카로운 눈빛, 크고 앞쪽으로 기운 귀’ 등을 ‘타고난 범죄자의 얼굴’로 결론지었다. 나아가 ‘폭력범은 이마가 넓으나 강간범들은 좁고, 방화범은 얼굴이 길고 말랐으나 사기꾼은 광대뼈가 나오고 살쪘다’는 식으로 범죄형 얼굴을 세분화하기도 했다. 물론 그의 주장은 비과학적이고 위험한 이론이라는 학계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창무 교수는 “범죄형 얼굴이 따로 있다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법정 스님이나 김수환 추기경이 과연 절대적으로 선한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범죄 위협을 피부로 느끼는 현실세계에선 사정이 달랐다. 2005년 프랑스의 한 디자인 업체는 그의 이론을 받아들여 ‘롬브로소 기계’까지 만들었다. 방문자가 카메라 앞으로 다가오면 저장된 범죄형 얼굴 정보에 의해 그의 얼굴 이미지가 분석돼 ‘착한’ ‘악한’ ‘이기적인’ ‘이타적인’ 등의 평가가 내려지도록 한 것이다. 얼굴을 통해서라도 범죄를 피하고 싶은 일반인의 심리를 반영한 현상이다.

강호순의 얼굴은 전문가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국내 최초 인상학 박사인 주선희(원광디지털대 얼굴경영학) 교수는 “(강씨는) 인상으로 봤을 땐 후덕하다기보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고 순식간에 일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타입”이라고 말했다.

“뺨이 통통하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았는데 이런 유형은 감정 조절이 잘 된다. 자기 연민에 빠진다거나 이타적 마인드를 갖지도 않는다. 눈썹이 차분하게 잘 누워 있는 것도 욱하지 않고 감정 조절을 잘 해 왔음을 뜻한다. 서비스로 단련된 부분이 얼굴에 반영된 것 같다. 안마사를 하면서 근육이 웃는 쪽으로 발달했을 것이다. 턱뼈가 옆으로 U자형으로 나와 있다. 이건 몸이 튼튼하고 지구력이 강하다는 증거다. 입이 크고 다물어져 있는데 이런 유형은 마무리가 깔끔하고 대담한 편이다. 좋은 길을 걸었더라면 유능하다는 말도 들었을 텐데 사회화 과정이 잘못된 것 같다.”

연쇄살인범을 소재로 한 영화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은 “도무지 범죄를 떠올릴 수 없는, 범죄와 연관 지을 수 없는 인상”이라고 했다. 나 감독은 “추격자를 찍을 때 (연쇄살인범 역할을 맡은) 하정우씨는 체중을 10㎏ 정도 감량했고, 헤어 스타일도 동네 이발소에서 자른 것처럼 평범하게 했다”며 “인상에 특별히 남을 만한 것이 없도록, 눈에 띌 만한 모든 요소를 가능한 한 제거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그는 “강호순이 끔찍한 범죄를 연쇄적으로 저지를 수 있었던 건 역설적으로 (위협감을 주는 외모가 아니라) 범죄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요소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창무 교수는 “강호순은 자기 얼굴로 여성들의 경계심과 방어 기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며 “(강호순의 얼굴을 보니) 범행 시 납치라는 억압적 방법을 쓰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강민석·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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