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의 세상 탐사] 이명박·김정일·오바마 3자 게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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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호 02면

3자 게임이 재개됐다. 주연은 이명박·김정일·버락 오바마다. 북한이 선제 공세를 취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6자회담 당사국들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당사국의 중심은 미국이다. 오바마 대통령에겐 우호적 메시지로 응수 타진한 것이다. 반면 한국에 대해선 떼쓰기식 협박을 했다. 북한은 “남북 정치·군사 합의는 무효”(1월 30일 조평통 성명)라고 선언했다.

게임의 핵심은 북한 핵무기 처리 문제다. 북한의 카드는 노출돼 있다.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 협상, 한국은 ‘왕따’시키기)이다. 이번 공세의 노림수도 마찬가지다. 게임은 미국과만 하고, 한국과는 긴장을 조성해 따돌리려 한다. 그런 뒤 한국을 ‘봉’으로 만들어 돈을 챙긴다. 그 수법은 좌파 정권 10년간 주효했다. 한국은 판돈이나 대는 무기력한 조연에 만족했다.

북한의 공세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다. 하지만 초조함도 드러난다. 게임의 새로운 변수들이 북한에 불리해서다. 오바마의 대북 입장은 부시 정부의 엄격함과 같다. “북한과의 외교 정상화는 핵무기(개발)를 완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제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복원됐다. 북한의 공세에 대한 이명박의 반응은 확신에 차 있다. 이 대통령은 “통미봉남은 폐기돼야 한다”(1월 30일 SBS 출연)고 말했다. 통미봉남은 그의 지적대로 “한·미 간 신뢰가 없을 때”나 유효하다.

지난 10년간 북한은 반칙·공갈과 벼랑끝 전략으로 판을 주도했다. 과거 부시 정부는 핵 게임에서 완패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 줬지만 핵 제거에 실패했다. 대북 전략의 정교함이 부족한 탓이다. 그에 못지않은 원인은 노무현 정권이 북한 편을 들어서다. 하지만 지금 한국 내 반미의 동력은 떨어졌다. 오바마 효과다. 미·일동맹도 강화됐다. 북한은 권력 교체기에 들어가 있다. 권력 내부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김정일은 이런 상황을 역전시키려 한다. 북한의 대응은 중국과의 밀착이다. 김정일은 자신의 건강 회복 이벤트를 중국 왕자루이(王家瑞·공산당 대외연락부장)와의 면담으로 대치했다. 북한은 오바마를 제2의 부시로 상정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을 또 다른 ‘봉’으로 만들려 한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이명박의 대북정책은 햇볕정책의 반성에서 출발한다. 통미봉남은 햇볕의 어두운 유산이다. 정상적 남북관계에 대한 그의 집념은 뚜렷하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 내정도 그 의지의 상징이다.

햇볕정책의 성취는 있었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은 교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러나 햇볕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지켜만 봤다. 핵무기는 너 죽고 나 죽자는 공멸의 장치다. 미국과의 대결 무기만이 아니다. 우리 민족 전체의 재앙을 부르는 흉기다. 햇볕은 ‘작은 성취, 큰 실패’로 귀결된다. 전환기적 정책은 진통과 반발을 불러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에 대한 집착은 특별하다. 민주당은 그의 영향력 아래 있다. 북한은 친북 좌파 세력을 통해 남한 내 갈등을 부채질한다.

그 진통을 최소화하는 게 정권의 역량이다. 햇볕의 성취는 인정하되 실패의 요인을 과감히 정비해야 한다. 전략적 역할 분담도 필요하다. 국방부는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NL) 침투 위협에 엄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국정원과 통일부는 대화 채널을 다져야 한다.

남북한이 함께 잘사는 길은 북한의 개혁·개방밖에 없다. 북한은 통미봉남을 포기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은 3자 게임의 한쪽을 확실히 차지해야 한다. 핵 게임에 깊숙이 개입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의 변화를 힘 있게 유도한다. 한국은 명분과 실력을 갖고 있다. 북핵에 우리 민족의 명운이 걸려 있다. 한국만이 북한을 확실히 도울 수 있는 돈과 인력을 갖췄다. 이명박 정권은 역사의 주인의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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