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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회는 새장, 날아오르다 보면 부딪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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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호 14면

“나는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낭만적인(hopelessly romantic) 타입이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사회주의는 대단해』의 작가 장리자

영국 국적을 가진 중국계 작가 장리자(張麗佳·45·사진)의 말이다. 그는 요즘 베이징(北京)에서 ‘잘나가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지난해 영어로 쓴 『사회주의는 대단해(Socialism is great) 』를 미국·영국에서 출판해 뉴욕 타임스가 선정하는 베스트셀러 명단에 올랐다.

『사회주의는 대단해』의 표지

장은 젊은 시절 ‘주체할 수 없는 낭만’으로 배 나온 공산당 간부를 비롯해 세 명의 남자를 유혹해 사랑에 빠지고 처녀의 몸으로 임신해 아기를 낙태한 경험이 있다. 문화혁명을 견뎌 낸 가족 얘기, 지식을 향한 욕구,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 성에 대한 욕구는 책 전체를 관통한다. 이런 개인사를 통해 냉전의 잔재가 남은 1980년대 중국의 사회상은 생생하게 묘사되고 벗겨진다.

장의 책은 호주·인도에서도 출판돼 영국의 몇몇 대학에선 교재로 채택됐다. 하지만 중국에선 출판하지 못하고 있다. 장은 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노동자들과 함께 시위에 참가했지만 용케 감옥에 가지 않은 ‘천안문 세대’다. 다음은 인도에 머물고 있는 장리자와의 e-메일 인터뷰 요지.

-한국 독자를 위해 책에 대해 소개해 달라.
“『사회주의는 대단해』는 내가 정한 제목이 아니다. 출판사가 잘 팔릴 것 같다고 생각해 정한 제목이다. 제목과 달리 내용 면에선 정치적인 색깔이 별로 없다. 내가 겪은 80년대 중국에서의 삶을 회고식으로 썼다. 나는 미사일 공장에서 공기 압력을 점검하는 여공으로 일했다. 그곳에선 여성 노동자들이 연애하다 혹시 임신했을까 봐 매달 임신 여부를 검사받았다. ‘서방 제국주의’의 언어인 영어 공부도 금지됐다.

나는 세 가지를 다 어겼다. 금지된 사랑을 하다 임신했고, 그 와중에 이를 악물고 영어 공부를 했다. 공장에서 10년간 일했지만 한 번도 승진하지 못했다.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정치 태도’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금지된 파마머리를 했다. 이런 삶을 통해 투영되는 80년대 중국 사회상에 서구인들이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책을 쓴 목적은 무엇인가.
“글을 쓰는 것은 내 삶을 내가 이해해 가는 방식이다. 나의 개인적인 삶의 기록이자 80년대 중국이 마오쩌둥(毛澤東)과 문화혁명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투쟁하던 사회상을 담고 있다. 중국에는 80년대 사회상을 회고한 책이 의외로 많지 않다. 내 책은 문화혁명을 다룬 많은 책처럼 사회의 암울한 면만 담은 것도 아니다.”

-개혁·개방으로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한 현대 중국을 어떻게 보는가.
“중국은 매우 혼란스러운 곳이다. 민주주의가 없지만 인민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 국가가 인터넷을 통제하고 있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매일 인터넷을 누비고 다닌다. 언론의 자유는 없지만 돈 벌 자유는 있다. 중국은 정말 많은 변화를 거쳤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룩하면서 정치 안정을 유지해 왔다. 물론 그 속엔 날로 커지는 빈부 격차와 환경 오염, 농민공의 노동력 착취 등 어두운 면이 숨어 있다.”

-중국 정부는 과연 민주화 의지를 갖고 있나. 천안문 사태 당시 학생이던 ‘천안문 세대’는 왜 민주화에 대해 침묵하는가.
“중국 정부는 중국이 여전히 가난한 나라라고 주장한다. 중국에서 인권의 의미는 우선 ‘먹고살 권리’를 의미한다.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공산당은 인민들에게, 특히 교육받은 중산층에게 더 많은 개인 공간과 자유를 부여했다. ‘천안문 세대’가 침묵하는 것은 대체로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중국 사회는 아직도 새장과 같다. 날아오르다 보면 더 이상 날아오를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친다. 하지만 그 새장이 충분히 커서 답답함을 자주 느끼지는 않게 한다.”

-올해는 중국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기념일이 많다. 티베트 독립운동 50주년(3월 10일), 파룬궁(法輪功) 항의 10주년(4월 25일), 항일운동을 촉발한 5·4운동 90주년, 6·4 천안문 사태 20주년 등이 있다. 더욱이 경제위기까지 겹쳐 사회 불안과 동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데.
“더 많은 군중 시위가 있을 것이다. 사회 밑바닥 계층의 불만이 많이 누적돼 있다. 예를 들어 도시 개발을 위해 토지를 잃고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서민들, 직장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인들의 권리의식은 과거보다 높아졌고 불의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마냥 참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도 시위 발생 시 강압적으로 진압하지 않는다. 인민들의 더 큰 반발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올해 발생하는 시위는 대부분 생계형 시위가 될 것이다. 전국적인 게 아니라 지역적으로 제한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지난 세대의 시위 때 선봉에 섰던 대학생과 지식분자들이 가세하지 않는 한 전국적인 사회 불안을 초래할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다.”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더욱 유명해진 『훠저(活着)』의 작가 위화(余華)는 중국 젊은이들이 갈수록 민족주의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부상은 많은 중국인, 특히 젊은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더 크게 내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커지는 민족주의는 사실 조금 걱정이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중국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민족주의가 중국인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공고한 일원이 되고, 국제사회가 중국을 좀 더 공평하게 대하고 존경심을 보여 줄 때 지난해 3월 티베트 시위 사태 때 봤던 편협한 민족주의(narrow nationalism)는 줄어들 것이다.”

-중국의 가치관이 세계의 보편적 가치관이 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그러나 전 세계에 더욱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서방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위협할 것으로 보는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의 급부상과 함께 그런 두려움이 대두되고 있다. 중국은 인도·브라질 등 다른 떠오르는 국가들과 더불어 서양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의 판도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개인적으로 남북한 두 곳을 모두 여행했다는데 어떤 느낌을 가졌나.
“태어나 많은 여행을 했지만 단체관광은 딱 두 번 했다. 한 번은 북한(93년)이었고 다른 한 번은 한국(2000년)이었다. 북한에 가선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한 게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느꼈다. 한국에 가서는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한국이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척 서구적이고 개방된 나라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막상 가 보니 의외로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다. 한국에 간 것은 88 서울올림픽의 민주화·개방 효과를 내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베이징올림픽이 똑같은 개방 효과를 내기를 바랐다.”

-중국 국적을 포기하고 영국 국적을 취득했다. 자신을 중국인으로 보는가, 영국인으로 보는가.
“영국 국적을 가진 것은 해외여행에 제한을 덜 받기 때문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여전히 중국인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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