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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직접대화 노린 의도적 긴장 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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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30일 인천시 강화군 양사면 강화 제적봉 평화 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의 모습. 북한은 이날 조국평화통일위 성명을 통해 남북기본합의서상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조항을 무효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강화=연합뉴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30일 “북남 간 화해·불가침 및 협력·교류에 관한 합의서(남북 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에 있는 서해 해상군사경계선 조항을 폐기한다”고 선언했다. 조평통은 이날 성명을 통해 “남조선 보수 당국이 지금까지의 북남 관계를 뒤집어 엎으며 서해 해상군사경계선 관련 조항이 휴지장이 돼 버렸다”며 “북남 사이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 사항들도 무효화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 같은 의도는 NLL을 분쟁수역화해 한반도에서 긴장을 조성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흔들기 전략이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NLL 합의 파기는 기존의 당국자 추방, 개성공단 축소 등의 비군사적 수단에서 군사 분야로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이라며 “NLL에서 긴장을 만들어 대남 압박 카드로 활용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이날 조평통 담화나 논평이 아닌 ‘성명’이라는 최고 수위의 발표에 나선 것도 ‘빈말이 아니다’라는 의지를 과시하려는 의도란 해석이다.

북한의 남한 때리기 이면엔 미국 끌어들이기도 숨어 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출범으로 한반도에 변화가 예고된 상황인 만큼 크게 판을 흔들어 북·미 직접 대화를 유도하려는 속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이번 성명에는 상황 악화를 막으려면 미국이 나서야 하고 그 대화 상대는 북한이라는 대미 메시지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긴장 고조 전략은 2월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을 앞두고 대대적인 체제 결속에 나선 북한 내부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조평통 성명의 또 다른 불씨는 기존 정치·군사 합의사항의 무효화다. 남북 간 정치·군사 합의가 집대성된 것은 1992년 발효된 남북 기본합의서다. 여기엔 NLL만 아니라 군사정전협정 준수, 비방 중단, 파괴·전복행위 중단, 향후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위한 군축 협의 등 거의 모든 정치·군사 현안이 망라돼 됐다. 북한의 이날 성명대로라면 북한은 이 같은 합의를 지킬 의무도, 남한과 앞으로 이런 문제를 협의할 의무도 없어진다. 이는 군축이나 평화체제 논의 등과 같은 핵심 이슈에서 남한을 배제할 명분을 만드는 것이라 이번 성명은 NLL 무력화 이상의 대남·대미용 중장기 포석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 맞대응 자제=청와대는 차분하게 대응했다. 대북 문제를 다루는 핵심 관계자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군은 동계 훈련 중이지만 NLL 침범 징후나 휴전선 인접 지역에서 군사 기동과 같은 특이 동향은 없다”고 전했다. 정부는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에서 “남북 기본합의서 등은 일방의 주장으로 파기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원태제 국방부 대변인은 “NLL을 확고히 지켜나갈 것”이라며 “북한의 침범 때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채병건·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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