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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워낭소리’를 들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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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워낭소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워낭이란 소의 귀에서 턱밑으로 늘여 단 방울을 말한다. 워낭을 단 소는 움직일 때마다 투박하고 느린 방울소리를 내게 마련인데 그것을 ‘워낭소리’라고 한다. 빠름을 미덕 삼아 속도의 승부로 미쳐 돌아가는 도시의 소음 속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소리다. 하지만 귀가 반쯤 먹은 할아버지의 늙고 느린 귀에는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다.

 # 영화 ‘워낭소리’는 오지 중의 오지인 경북 봉화의 청량산 자락에 사는 팔순 할아버지와 마흔 살 난 소의 실화다. 보통 일하는 소의 평균 수명이 15년이라니 마흔 살이면 정말 늙은 소다. 영화에 나오는 최원균 할아버지는 여덟 살 때 한 쪽 다리 힘줄이 늘어져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왔다. 하지만 늙은 소가 끌어주는 작은 수레를 타고 움직일 수 있었고, 그 소 덕분에 농사를 지으며 9남매를 키웠다. 우직한 늙은 소가 한 집안을 먹여 살린 셈이다.

# 할아버지는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 유기농에 대한 대단한 신념이 있어서라기보다 농약을 치면 소에게 꼴을 먹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몇 갑절 힘이 들고 수확량도 현저히 줄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고집스럽게 농약 없이 농사를 지었다. 할아버지는 소에게 손쉬운 사료 대신 손수 꼴을 베어 먹이고, 쇠죽을 끓여 먹였다. 그것이 늙은 소에 대한 할아버지의 마음이었다.

#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한데도 기계가 아닌 손으로 모를 심고 추수할 때도 기계 대신 손수 낫으로 벼를 벴다. 세상 변화에 한 참 뒤처져 보이는 할아버지이지만 점점 빨라지는 세상의 속도와 타협하지 않았을 뿐 삶의 실패자나 낙오자는 결코 아니었다. 그는 소걸음처럼 느리게 사는 삶의 방식을 옹골지게 견지했을 뿐이다. 느린 것이 빠른 것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은 우리 삶의 조급증이 불러일으킨 편견일 따름이다.

# 늙은 소와 할아버지는 어딘가 닮았다. 느린 걸음걸이도, 힘겨워 보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고집도. 사실 덕지덕지 쇠똥과 진흙이 범벅돼 더께가 눌어붙은 야위디야윈 늙은 소의 엉덩이나 지게 짐을 지느라 가뜩이나 야위고 병든 다리에 힘겹게 얹힌 할아버지의 구부정한 몸뚱이는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 소를 팔겠다고 할아버지가 우시장으로 향하던 날, 마지막이라고 여물 한 바가지를 더 얹어주었다. 하지만 늙은 소는 큰 눈망울로 눈물만 떨어뜨릴 뿐 여물에 별반 입을 대지 않았다. 우시장에서 할아버지는 거저 줘도 안 가져갈 것 같은 늙은 소를 500만원이 아니면 안 팔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결국 아무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 할아버지와 늙은 소는 함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온 늙은 소는 추운 겨울 동안 할아버지 내외가 따뜻하게 지내라고 지치고 느린 걸음이지만 미련하고 우직하게 나뭇짐을 잔뜩 져 날랐다. 그러던 어느 날 늙은 소는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한 채 힘겹게 마지막 숨을 내쉬며 죽었다. 할아버지는 그 소를 사람처럼 장사 지내고 땅에 묻었다. 그리고 이내 가슴에 다시 묻었다.

 # 도시에 살면서 워낭소리를 듣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내 마음의 워낭소리는 들어야 한다. 그것을 들어야 소의 해인 올해를 제대로 살 수 있다. 소걸음으로 상징되는 느림의 지혜, 꾀부리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우직함을 담은 워낭소리를 자기 내면에서부터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위기와 난관으로 점철될 올해를 제대로 뚫어갈 수 있지 않을까.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