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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선>일본, 異業種교류 중개社 번창 - 어번클럽, 지난해 21억원 수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75년 도쿄(東京)가스에 입사한 니시야마 아키히코(44)는 매일 직장동료들끼리만 어울려 다니는 현실에 진절머리가 났다.

파티장에서 얼굴 모르는 상대와 만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미국인들에 비하면 일본 직장인들의 사교성은'제로'라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사내창업이 붐을 일으켰던 지난 91년.니시야마는 사장앞으로 이색적인 아이디어를 제출했다.

“일본의 샐러리맨들은 교류범위가 너무 좁고 사교성이 부족하다.이래서야 국제경쟁에서 살아날 수 없다.샐러리맨들의 이업종(異業種)교류를 도와주는 회사를 설립하자.…” 일본 유일의 이업종교류 중개회사인'어번(도시)클럽'은 이렇게 설립됐다.자본금은 1억엔.도쿄가스와 다이치간교(第一勸業)은행.미쓰비시(三菱)상사등 대기업 8개사가 주주로 돼있다.

회원은 1천5백명.35세 이하의 젊은 남녀가 6백명정도이며 나머지는 과.부장급 직장인이다.

최근 어느날 오후6시30분 도쿄 요쓰야(四谷)의'어번클럽'.'중간간부의 역할'이란 주제를 놓고 40대 과.부장급 직장인 30~40명이 한자리에 모였다.위아래에 끼여 '샌드위치'신세가 돼있는 중간간부의 고민을 풀기 위한 모임은 직장은 다르지만 비슷한 처지라서 그런지 금방 열기로 달아올랐다.저녁식사는 샌드위치와 간단한 음료수로 때우면서…. 젊은 직장인들의 모임은 여자회원이 많아서인지 더욱 화기애애하다.'도쿄 먹거리 탐방'을 테마로 내세운 이 모임은 회의장소를 아예 신주쿠(新宿)의 유명한 한 주점으로 잡았다.그렇다고 먹고 마시는 이야기를 위한 자리는 아니다.이날 모임에서는 비즈니스에 컴퓨터를 활용한 생생한 경험들이 부딪치는 맥주잔 소리와 함께 오고갔다.'어번클럽'은 회원들의 희망에 따라 다양한 분과회(分科會)를 만들어 연간 3백회정도의 이벤트를 주선,지난해 3억엔(약 21억원)의 수익을 올렸다.회비는 분과회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보통 연회비 1만엔에 1회 참가비용이 5천엔가량 든다.

'어번클럽'처럼 회사형태로 된 경우는 아니지만 개인이 주최하는 군소 이업종교류회는 수없이 많다.해마다 그 수가 늘어나 서점에는 이들 교류회를 안내하는'인맥만들기'책까지 나올 정도다.정보화사회가 성숙되면서 일본 샐러리맨들 사이에“마당발이라야 살아남는다”는 위기감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미쓰비시자동차공업에 근무하는 호시노 다케시(星野威.31)는 모임이 끝난후 백화점직원.회계사.소설가.제약회사직원등 20여개의 명함을 훑어보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내근이 대부분인 연구개발부문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야의 사람들과 사귀고 싶었다”는게 그의 가입동기였다.

공무원인 가토 시게키(加藤重樹.43)는“행정개혁이다 뭐다 해서 공무원사회에도 구조개편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막연하지만 여러 분야의 사람을 알아둘 필요를 느꼈다”고 말했다.이업종교류회는 파티를 열어 이성간의 만남을 주선해왔던 기존의 교류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교류의 폭을 넓힐 수 있는데다 잘하면 창업이나 전직(轉職)의 아이디어까지 얻을 수 있는 이업종교류회는 종신고용제가 사라지고 있는 일본의 기업분위기와 맞아 떨어져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정보화.전문화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직접 만나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호흡을 느끼려는 움직임은'디지털'의 공허함을 메우려는'아날로그'적인 반작용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도쿄=김국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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