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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기자의 환경 이야기] 식물국회? 식물들이 들으면 화낼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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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겨울 추위가 물러가면서 남쪽 지방에서는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가 시작됐습니다. 이른 봄 고로쇠나무가 수액을 내놓는 것은 낮과 밤의 온도 차 때문입니다. 밤 기온이 영하 3~4도, 낮 기온은 영상 10도로 일교차가 15도 정도일 때 가장 많이 나옵니다. 밤에 온도가 내려가면 줄기 속 이산화탄소가 물관의 물에 녹아 들어 진공이 생깁니다. 이 빈틈을 채우기 위해 뿌리로부터 물이 많이 올라오고, 이것이 수액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로쇠나무가 아니더라도 봄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나무에 물이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허풍을 떠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로 스위스 과학자들이 나무에 정교한 마이크로폰을 갖다 대고 측정했더니 나무가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이 소리가 물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순수한 물리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없는 초음파입니다.

소리를 듣는 식물도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 작물이 빨리 자란다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국내에서도 2007년 농업과학기술원 연구팀이 벼의 유전자가 특정 주파수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식물 가운데는 곤충이나 초식 포유류의 공격에 저항할 정도로 똑똑한 것도 있습니다. 동물이 잎을 뜯어먹을 때 식물 조직이 으깨지거나 부서질 때 세포 내 단백질이 타닌이란 물질과 결합합니다. 따로 나뉘어 있던 두 물질이 합쳐지면 이를 먹더라도 소화가 잘 안 되고 몸에도 해로운 물질이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아프리카의 아카시아 나무 중에는 초식동물의 공격을 받은 식물이 공기 중으로 냄새(화학물질)를 발산해 주변의 다른 나무에게 ‘경계령’을 내리기도 합니다. 냄새를 맡은 주변 나무는 방어용 화학물질을 체내에 생성합니다. 새로운 물질이 생성되면 맛이 없어집니다. 결국 초식동물들은 경계 신호를 미처 듣지 못한 나무를 찾아 멀리 떠나게 됩니다.

시든 흉내를 내는 미모사나 벌레를 잡아 먹는 끈끈이주걱을 보면 식물은 꼼짝 않고 소극적일 뿐이라는 우리의 선입견이 무색해집니다. 만일 사람들이 좋지 않은 의미로 ‘식물 국회’라는 말을 쓴다는 사실을 안다면 식물들이 화를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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