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빅뱅>1.증시 대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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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증권업계에 비상이 걸렸다.고객들에게 물리는 위탁수수료가 오는 9월부터 완전 자유화됨에 따라 증권업계는 무한경쟁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은행으로 치면 금리를 완전 자유화하는 것에 맞먹는 변화다.

규제의 보호막속에서 안주해 오던 부실 증권사들의 도산이 앞당겨지고 합병등에 따른 이합집산이 가속화될게 뻔하다.

증권업계의 이같은 지각변동을 예상하는 것은 증권사의 수입 가운데 위탁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55%(96년)를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다.이제까지는 서로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나눠먹기식의 안주가 가능했으나 앞으로는 사정이 전혀 달라지게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위탁수수료 자유화방침이 발표되자 증권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증권사 사장들은 23일 증권업협회에서 긴급 임시총회를 열고“최소한 1~2년간의 유예조치 없이 급진적으로 자유화가 시행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며 당분간 증권사끼리 수수료 차별화를 자제할 것을 결의했다.

증권사 사장들은 또 위탁수수료수입 비중이 30%이하로 떨어질때까지는 인하경쟁을 가급적 하지말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동아증권의 김영종(金榮鍾)사장은“지금 상태로도 적자를 보고 있는 증권사들이 수수료 덤핑경쟁에 들어가게 되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고 몇몇회사를 빼고는 수지를 맞추기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더욱이 증권당국이 증권사들의 자산운영에 깊숙이 개입해 수입원 다각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현실에서 수수료 자유화는 증권산업의 존립기반마저 흔드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수수료 비중이 큰 일본도 자유화조치를 98년 이후부터 단계적으로 하는등 유예기간을 두었다며 자유화의 파장을 너무 소홀히 생각한게 아니냐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전산화등으로 돈들어갈 곳은 아직도 많은 상황에서 핵심 수입원인 수수료를 자유화하게 되면 정상경영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셈이다.싫든 좋든 증권사들은 9월부터는 수수료 경쟁을 벌여야할 판이다.물론 투자자등 고객의 입장에선 거래비용이 줄어들고 이에따라 증시도 활성화되는등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사활을 건 싸움판에 휘말리게 된다.

외국의 경우에도 수수료 자유화는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었다.

75년 수수료 규제를 푼 미국의 경우 당시 상위 10대 증권사 자리를 지켰던 증권사중 대형사 지위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곳은 메릴린치 뿐이고,영국의 경우 10대 증권사중 9개가 주인이 바뀔 정도로 자유화의 파장은 넓고 깊다.

대형사들도 역시 충격이 클 전망이다.수수료수입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점포를 잔뜩 늘려왔는데 수수료 자유화에 따라 점포시설유지비와 인건비를 충당하기조차 힘들어진 까닭이다.이에 따라 점포운영형태가 현재의 직영체제에서 프랜차이즈등 새로운 방식이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위탁수수료율이 현재의 절반 정도로 떨어지게 되면 현재의'직영'체제로는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며“독립채산제인'소사장제'나 프랜차이즈등의 영업방식이 인기를 끌 것 같다”고 말했다.

자유화 이후엔 지금같은 수수료담합도 힘들 전망이다.특히 수수료 의존도가 낮은 국내진출 외국증권사들이 요율인하에 앞장설 것이기 때문에 담합행위는 곧바로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이같은 상황에 대비해 증권사들은 자구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대우.동서.대신등 점포가 70개가 넘는 대형증권사들은 수수료 수입이 줄어들 경우 점포를 폐쇄하거나 인력을 줄이는등의 비상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증권당국도 앞으로 파산하는 증권사들이 생길 것으로 보고 지난 4월 개정 증권거래법에 도입된 투자자보호기금을 확대하는등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홍승일.김동호 기자

<사진설명>

오는 9월부터 증권사 수입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위탁수수료가 자유화됨에 따라 증권업계에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사진은 서울 여의도의 신증권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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