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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은 영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요즘 중견감독 배창호를 만나면 몸에서 자장면 냄새가 나는 것같다.신작 '북경반점' 촬영을 앞두고 '뭐 좋은 아이디어 없느냐'며 중국집 순례가 분주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소재로 잘 만든 영화를 보면 영화를 보는게 아니라 영화를 먹고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영화 목록을 보면 그런 구미를 당기게 하는 영화를 찾을 수 없다.'만들지 않았으니 없는게 당연하지 않나'라고 해버리면 좀 무책임해진다.

음식엔 그 나라,그 지역,그 집안,그 사람의 문화가 깊게 배있다.그 문화적 차이 때문에 음식은 세상을 또는 사람을 읽는 중요한 기호가 된다.여기에 무게를 두면 영화는 상당한 품격을 갖추게 된다.

음식 만들기는 묘기이자 예술이다.묘기엔 경쟁심이 작용하고 예술엔 장인의 고집이 따른다.여기에 중점을 두면 음식영화는 무협이나 서부활극같은 재미를 맛보게 한다.공교롭게도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음식영화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우선 배창호감독이 들고나온 '북경반점'은 무협 쪽에 가깝다.영화속 '북경반점'은 '만리장성'이라는 초현대식 대형중국집에 밀려나버린 재래식 중국집이다.

박중훈이 맡게 될 것으로 보이는 주인공은 베이징(北京)에서 정통요리를 공부하고 중국요리의 대가로 출세하려는 야심을 갖고 귀국한다.그러나 한국에선 요리라야 유산슬.탕수육이 주메뉴고 오히려 자장면의 맛이 중국집간의 승부를 결정하고 있는 형편이다.

비장의 요리를 선보이지도 못한 채 좌절한 이 젊은 요리사는 자장면의 비법을 터득하기 위해 산속에 은거한 원조 자장면의 대가에게 삼고초려 접근해 맛의 비법을 전수받는다.

단칼의 피터팬과 같은 젊은 요리사가 자장면 비법 하나로 공룡같은 '만리장성'을 통쾌하게 무찌른다는 이야기다.올가을 개봉. 배감독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면서도 별 관심을 끌지 않았던 자장면을 소재로해 우리 삶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로 삼고 싶다”며 “중국음식점 풍경을 코믹터치하면서도 인생의 축소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작품의도를 밝혔다.

미국에서 개봉돼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스탠리 투치 감독의 '빅 나이트'는 음식문화와 요리사의 상처입은 자존심을 다룬다.올가을 국내 개봉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프리모와 세콘도 형제.우리식으로 하자면 일남이와 이남이다.이 형제는 미국에서 레스토랑을 차려 성공해보겠다고 이탈리아에서 뉴저지로 왔다.

그러나 미국식 식당은 달랐다.파리만 날리다가 한 손님이 오자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밥(리소토)요리는 외면받고 만다.반면 건너편의 라이벌 레스토랑은 스파게티와 미트볼등 '싸구려'메뉴만으로 손님이 들끓고 있다.실의에 빠진 형제는 미국식 비즈니스의 철학에 타협할 것인지 고민한다.요리 뿐만 아니라 연애에서도 미국식을 이해하지 못해 배반당한다.

단골손님들이 모인 라이벌 식당의 디너 파티에 초청된 형제는 실력을 십분 발휘하지만 남는 것은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입들뿐.진정한 맛을 추구하는 형제의 마음은 끝내 실종된다.아무튼 이같은 영화들에서 발견되는 식당 운영의 승부처는 보통음식을 잘 만드는 것이 특수요리를 잘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대중을 잡으라는 것이다.

글=채규진.사진=최정동 기자

<사진설명>

위에서 부터 시계방향으로 중국음식점 앞에서 포즈를 취한 배창호감독,영화'빅나이트''음식남녀''바베트의 만찬'의 한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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