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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 살해범, 미국 CSI처럼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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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군포 여대생 살인사건 피의자 강모(38)씨가 27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시체 유기 장소에서 당시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김도훈 인턴기자]

 경기도 군포 여대생 강도살인 사건 범인 검거는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한 저인망식 수사의 결과였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A씨 (21)의 실종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20일 범죄 피해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마지막으로 행적이 확인된 군포보건소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현장 조사에 들어갔다.

우선 A씨의 예상 이동로(군포보건소∼안산시 건건동∼안산시 성포동 일대 반경 6㎞)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확인 작업에 착수했다. CCTV는 보건소를 비롯해 인근 도로, 주유소, 은행 등 모두 310개였다. CCTV를 정밀 분석한 결과 사건시간대(12월 19일 오후 3시10분~오후 7시28분) 운행한 차량은 7200대에 달했다. 전담 수사 인력 30여 명이 차량 소유주를 찾아다니며 당일 행적을 일일이 확인했다.

동시에 ‘군포, 안산, 실종, 납치, ㅇ씨(피해자 이름의 첫 모음)’ 5개 단어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한 네티즌을 추적했다. 범인이 증거 인멸 및 도주를 위해 경찰의 수사와 관련된 내용을 인터넷으로 파악하는 최근의 추세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용의자 강모(38)씨가 CCTV에 잡혔다. 동일 전과의 범죄자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범죄 프로파일링’ 기법이 동원됐다. 강씨는 강도강간과 특수절도 등 전과 9범이었다. 조사 결과, 강씨는 사건 당일 오후 3시22분 군포보건소 주변을 통과한 검정색 에쿠스차 소유자(54·여)의 아들이었다.

경찰은 안산시 팔곡동 강씨의 집을 찾아가 알리바이를 조사했다. 강씨는 “애인을 만나고 집으로 가던 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강씨 애인 진술과 강씨 휴대전화의 통화 내역을 통해 거짓임을 확인했다. 이어 24일 오전 강씨 차량과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같은 날 저녁 강씨를 검거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강씨는 경찰에서 “성폭행 목적으로 A씨에게 접근해 살해했지만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치밀하고 섬뜩한 범행 수법=강씨는 A씨의 신용카드로 농협 현금인출기에서 현금 70만원을 인출할 때 신원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더벅머리 가발을 착용했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범행에 사용한 차량을 불태웠다. 승용차에 남아있을지 모를 피해자의 머리카락이나 피해자 물품, 저항 흔적 등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A씨가 반항하는 과정에서 손톱에 자신의 살점이나 머리카락이 남았을 것을 우려해 A씨의 10개 손톱을 모두 잘랐다. 경찰이 인터넷 검색 조사에 들어가자 자신의 컴퓨터를 새로 포맷해 컴퓨터를 이용한 모든 흔적을 지우기도 했다. 경기경찰청 나원오 폭력계장은 “마치 미국의 범죄수사드라마 CSI(과학수사대)나 인터넷을 통해 범죄 행동요령을 학습한 것처럼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화재로 숨지고 실종된 전처들=경찰은 2005년 10월 강씨의 장모 집 화재로 부인과 장모가 숨진 사건을 재수사하기로 했다. 보험금을 노린 방화살인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부인(29)과 장모(60)는 숨졌으나 강씨와 아들(12)은 살아남아 4억원의 보험금을 탔다. 강씨는 화재 발생 1∼2주 전에 2건 등 모두 4건의 보험에 가입했다. 화재로 숨진 부인은 강씨의 네 번째 부인이었다. 첫 번째 부인은 2003년 3월 실종됐다.

강씨는 지난해 말부터 안산 상록수 역 인근 스포츠마사지숍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범행 후에도 평소처럼 생활했다. 빚이 8000만원가량 있지만 수억원대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남는 의문=A씨가 왜 강씨 차량을 탔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강씨는 “A씨에게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하자 스스럼없이 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대 여성이 생면부지의 강씨 차량을 선뜻 탔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강씨가 강제로 태웠거나, 두 사람이 안면이 있었을 수 있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강씨는 범행에 사용하지 않은 자신의 무쏘 차량도 불태웠다. 또 다른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강씨 어머니의 에쿠스와 무쏘 승용차에선 군용 야전삽과 해머·쇠스랑·도끼날·피임기구·청테이프 등이 발견돼 이런 의혹을 뒷받침한다. 경찰은 2년 전인 2006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 사이 군포·화성·수원·안산에서 발생한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 실종 사건에 연루됐는지도 조사하기로 했다.

수원=정영진 기자 ,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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