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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우리 茶 품질 기준 빨리 만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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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내 차(茶)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품질 평가기준의 마련이 시급합니다. 중국.일본에 비해 많이 늦었지만 그렇더라도 더 이상 미뤄서는 곤란합니다. 소비자나 생산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거든요."

전통 차 문화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여연(如然.56) 스님이 한국 차의 경쟁력 강화에 발벗고 나섰다. 조선 후기 한국 다도를 정립한 초의(艸衣.1786~1866) 선사의 '다맥'을 잇고 있는 그는 다음달 17, 18일 경북 경주시 보문관광단지에서 열릴 '제1회 대한민국 차 품평회'의 조직위원장을 맡아 분주하게 뛰고 있다. 품평회에는 한국차인연합회.한국차문화협회.명원재단.일지암 차문화연구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 차는 200여종이 나와 있는데 모두 자기가 명품, 자기가 최고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객관적 기준이 없어요. 차는 원래 기호식품이라 각자 좋아하는 맛이 다를 수 있지만 산업으로 발전하려면 공인된 잣대가 있어야 해요. 중국만 해도 50여년 전에, 일본만 해도 30여년 전에 시작한 일입니다."

품평회는 스님에게 일종의 '외도'다.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말처럼 차와 수행을 동일시하는 스님이 산업적 측면에도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상황이 화급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수천종의 브랜드가 있는 중국 차는 국가.지방.기업 등이 만든 겹겹의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국내 차 공급은 수요를 따르지 못합니다. 그런데 품질 기준이 없으니 믿고 살 만한 차가 드물어요. 소비자만 피해를 보는 거죠. 또 요즘 중국에서 값싸고 좋은 차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품질 표준화는 불가피합니다."

국내 차 인구는 300만명으로 추정된다. 차의 약리적 효용이 속속 밝혀지고,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웰빙 붐을 타고 차 애호가 또한 계속 늘고 있다.

"차문화는 나라마다 다릅니다. 중국은 향기를, 일본은 색깔을, 한국은 맛을 최고로 쳐요. 품평회에선 시판되는 주요 차의 입자.맛.향.색, 우리고 난 뒤의 모양, 과학적 성분 등을 종합 심사하고, 그 결과를 낱낱이 공개할 겁니다. 내년에는 정부와 손잡고 명실상부한 'KS'를 만들 계획이에요."

1976년 차를 덖기 시작한 스님은 91년부터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전남 대흥사 일지암 주지를 맡고 있다. 암자 주변에서 직접 차 농사를 짓고 있으며 98년 초의차문화연구회를 차렸다. 품평회를 위해 지난 겨울 중국에서 차 평가 자격증도 땄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도 맡고 있는 그는 요즘 2주에 한 번꼴로 일지암에 내려가 차를 돌보고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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