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속의홍콩>158년전 영국아편 불태운 淸朝관리 린저쉬 영웅으로 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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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국 광둥(廣東)성 둥완(東莞)시 타이핑(太平)진의 인민공원 체육행사장.지난 3일 이곳에는 무려 32만명의 시민.학생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적막이 흘렀다.군중의 시선은 광장 한복판 불쏘시개 위에 놓인 헤로인 5백㎏에 붙박여 있었다.물경 5천만위안(약 55억원)어치의 마약이다.불을 붙이자 5천만위안어치의 마약은 순식간에 불기둥 속으로 사라졌다.순간 우렁찬 환호성이 행사장의 하늘을 갈랐다.

황제의 전권을 위임받은 흠차대신 린저쉬(林則徐)가 영국상인들로부터 몰수한 2만3천여상자의 아편을 이곳에서 불살라버린 역사가 정확히 1백58년만에 재현된 것이다.

홍콩병탄을 가져온 아편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관직을 박탈당한뒤 저장(浙江).신장(新疆)등으로 떠돌아야 했던 린저쉬.유배객이었던 그는 홍콩반환을 앞두고 이제 TV스타처럼 영웅대접을 받고 있다.

우선 푸젠(福建)성 TV공사의 18부작 대형 TV드라마'린저쉬'가 지난 3월 완성됐다.林을 부당한 외세에 저항해 투쟁한 불굴의 인물로 그린 작품이다.林의 문집들도 재출판됐다.

생전에 그가 머물렀던 신장과 허난(河南)성에선 기념관 설립이 추진중이다.특히 그의 고향 푸저우(福州)에서는 지난 95년 설립된 린저쉬기금을 재원으로 기념관 설립과 생가 단장이 한창이다.

그러나 갑작스런'林열풍'에는 중국정부의 냉정한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한마디로 아편전쟁 당시 보여준 林의 투쟁정신을 강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민족의식을 높여보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중국정부의 이같은 계산은 지난 84년에 이미 드러났다.당시 중국정부는 林의 5대손인 모칭(墨卿)에게 84년 체결된'홍콩반환에 관한 중.영 공동성명'을 유엔 법률사무소에 등록하는 일을 맡긴 것. 林이 영웅적인 민족주의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홍콩 상실'을 초래한 장본인이었던 만큼 그의 후손이 '마무리 책임'을 져야한다는 논리에서였다.

그렇다면 현재 중국에서 타오르는 '린저쉬 열풍'은 반환이후 홍콩내의 탈중국적인 '허튼 짓'을 경고하는 무언의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사진설명>

민족주의자로 떠오른 린저쉬의 초상화와 린의 5대손 모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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