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팔아먹는 700유료전화 서비스, 그 유혹의 뒷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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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성(性)에 대한 호기심이 꿈틀꿈틀 솟아나는 중학교 3학년 Y군.오늘은 스포츠신문에 실린'700유료전화정보서비스'광고가 손목을 당긴다.'남.여 관계고백''이성체험고백''미혼.기혼여성 경험''기혼여성의 부부생활 고민과 그 해소법'….우와! 이런 근사한 보물창고(?)가 있었다니. Y군은 떨리는 마음으로 번호판을 눌렀다.“정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삐'소리가 난 다음부터는 30초당 80원의 정보이용료가 부과되오니 원치 않으면 끊어주세요.삐-.”'원하지 않으면 왜 걸었겠어'.Y군이 숨을 한번 고르는 동안 어느새 여자의 목소리는 느릿느릿하고 간드러지게 변했다.이용시간에 따라 요금이 계산된다니'삐'소리 이후 말하는 속도를 3분의1 수준으로 떨어뜨린 장삿속이야 그렇다 치고,이런 내용을 간드러진 목소리로 얘기하는 까닭은 뭐지?“이용도주~웅 별표를 누르시며~언 제~에일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축축한 목소리에 가슴 설레며 본론을 기다린다.“작년에 여고를 졸업했어요.너무 못생겨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졌습니다.외모때문이지요.”이런,유머난을 잘못 눌렀나?“주변친구들은 모두 남자친구가 있는데 저는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어 고민했어요.그러던 어느날 잘 생긴 남자가 관심을 보였습니다.그를 만나다 보니 귀가시간이 늦어지고 언제부턴가 그이가 저를 원해요.”야,이제 시작이로구나.“이럴 땐 어떻게 하죠?”물어본 그 여자가 대답도 한다.“사랑을 느끼면 남자는 확인을 하고 싶어합니다.하지만 순결을 허락하기 전에는 몇가지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남자의 진실을 확인하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세요.…잘 생각해 보세요.”애걔? 이게 뭐야.무슨 이런 체험고백이 다있어. 간간이 분위기에 안맞는 사라사테의'치고이네르바이젠'선율까지 끼어들면서 흘러간 시간이 11분.전화요금을 빼고도 이미 1천7백60원의 서비스요금이 날아갔다.다른 번호들도 눌러봤지만 사정은 오십보 백보다.

'기혼여성의 경험'을 선택하자 시부모와의 갈등 얘기가 나온다.왜 이렇게 선택하라는건 많은지.그것도 마음이 당기는 항목은 항상 제일 나중이다.“시어머니와의 관계는 1번,자녀문제 고민은 2번,부부관계 불만은 3번을 눌러주세요.” Y군이야 모르겠지만 92년 등장한 700유료서비스 초기엔 화끈한 내용도 많았다.그러나 이 문제가 계속 시끌시끌해지자 대책으로 나온 것이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초강력 심의다.“초등학교 6학년~중학교 2학년을 기준으로 심의하고 있죠.요즘엔 음란한 내용으로 적발되는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윤리위원회측의 얘기다.

한국통신측과 윤리위원회의 견해.“한번씩은 속을지 몰라도 두번 다시는 안걸테니 자연히 도태되리라고 봅니다.”“실제로 한번 이용한 사람이 다시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게 정보서비스 업자의 고백이고 보면 당국자의 생각이 맞는 것도 같다.그러나 중요한건 매년 70여만명의 아이가 태어나고,그만큼의 청소년이 사춘기에 접어든다는 점이다.이들이 한번씩만 속아도 업자들 먹고사는데는 지장이 없다.

맹렬한 심의가 실시된지 4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런 정보가 꿋꿋이 버티고 있는 점에서도 이 사실은 입증된다.지금 전국에서 1천여 업체가 쏟아붓는 서비스는 약 4천종.한국통신측도 목록만들기를 포기한지 이미 오래다.신문광고에 등장하는 인기품목 1백여가지중'경험''체험'류가 5~10개니 그 위세를 가늠하기란 어렵지 않다.

결국 눈으로 보이는 것에만 칼을 휘두른 결과,중학생들이 비싼돈 들여가며'고부갈등 고민'을 듣는 코미디같은 현실이 빚어진 셈이다.

인터넷이나 비디오.만화를 통해 무수한 음란물을 접해본 Y군이지만 이번엔 참담한 배신감만 느꼈다.낙담해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자,귀를 쫑긋 세우고 둘만이 즐길 수 있는 사랑법을 들어볼까요?”혹시나 하며 마지막 기대를 걸어본다.

“둘만의 찻잔을 가져보세요.이를 위해 쇼핑을 함께 하셔도 좋습니다.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드세요.야유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뽐내보십시오.”제기랄!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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