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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엿보기>1. 수세식 便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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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배설 행위와 결과물에 대해선 누구나 부정적이다.이러한 사실은 “사돈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에서도 확인된다.화장실을 뒷간으로 명명한 사실이 우선 수상하고,멀수록 좋다는 말이 더욱 그렇지 않은가.더욱이 뒷간의'뒤'는 방위로 따지면'북녘'과 통하고,북녘은 어둠.겨울.죽음등과 연결되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아울러 설화속의 뒷간 귀신'노일저대'야말로 이 땅에 적을 둔 하고 많은 귀신 가운데 가장 무섭고 고약한 귀신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화장실이 멀다 보니 이용자들의 고충도 이만저만 아니었다.세상에서 더없이 편해야 마땅할 변소(便所)는 천하의 불편소(不便所)로 둔갑했다.해가 속절없이 지거나 엄동설한에 설상가상 비상사태(설사)까지 겹치면 대소사가 임박한 선남선녀들은 스타일을 구기기 일쑤였다.이는 요강의 탄생을 재촉했다.비록 서양사회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요강은 여염가.양반가 할 것 없이 두루 요긴하게 쓰였다.뼈대있는 반가(班家)에서는 요강닦는 일을 도맡는'요강담사리'라는 종을 부렸고,나들이할 때는 길요강부터 챙겼다.

요강은 본디 소변 전용이었지만 구중궁궐에서는 대소변 가리지 않고'매우(梅雨)틀'(또는 매화틀)이라 불리는 특제 요강을 이용했다.혹자는 매우틀은 궁중용어로 매가 기실은 똥이고 우가 오줌이라고 한다.'우=오줌'은 금방 알겠는데 왜 매가 그것인지 이해하긴 쉽지 않다.만유인력의 법칙을 좇아 열심히 낙하하던 결과물이 평평한 바닥에 부딪쳐'팍'-,순간 고루 퍼진 모양이 마치 활짝 핀 매화형상이 아니던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똥.오줌을 막무가내로 배척했다 생각하면 오산이다.이러한 사실은 베르사유 궁과 달리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에는 어림잡아 스물여덟 군데,동궐엔 스물한 군데의 뒷간이 있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또 여염의 경우도 뒷간을 비록 가까이 두지는 않았으되 반드시 설치했다는 사실이다.그것도 여성을 위한 안 뒷간과 남성을 위한 바깥 뒷간을 따로 마련했다는 것은 놀랍다.

어디 그 뿐인가.세상의 이치를 아는 사람중엔 똥을 귀하게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오죽했으면“한 사발의 밥은 주어도 한 삼태기의 똥재는 주지 않는다”는 속담이 다 생겼을까.농사를 주업으로 삼았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 물질은 곧 거름이자 황금이었던 것이다.실제로 금세기초 수원지방에서는 똥재가 상품 한섬에 30전,중품은 20전,하품은 10전에 팔렸다는게 민속학자 김광언선생의 생생한 고증이다.똥재의 품질을 가르는 기준은 오줌량의 과소로,건더기가 적고 국물이 넘치면 일단 하품으로 평가됐다나. 얘기가 새지만 같은 농경국인 일본의 경우도 거름용 똥은 품질등급이 세밀하게 나눠져 있었고 가격도 다 달랐다.그런데 일본의 사정기준은 우리나라와 달리 배설자의 신분으로,귀족-공중변소-상민-범죄자 순으로 가격이 형성됐다.금테두른 변(便)이 있다는 사실,환언하면 범죄자의 그것은 글자 그대로 똥값이고,다이묘나 사무라이와 같이 귀족계급의 그것은 금값이라는 사실은 일견 황당해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합리적이다.아웃풋(분뇨)의 품질이 인풋(섭생)에 예속됨은 당연하니까.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그 아웃풋을 아끼는 애틋한 정서는 웃지 못할 일을 빚어내기도 했다.알뜰한 구두쇠 농사꾼은 마실을 돌다가도 사태가 심상찮으면 이리저리 핑계를 둘러대곤 집으로 돌아가 일촉즉발의 근심을 푼 뒤 다시 외출했다('호모 토일렛'의 저자 이상정선생의 증언).그런가하면 1950년대만 해도 똥을 몰래 퍼 야반도주하는 도둑들이 들끓어 골머리를 앓았다(김광언선생의 증언). 황금같은 비료를 잃을까 밤잠설치는 농부의 모습이 페이드아웃되고,대신 주인 몰래 대소변을 풀어놓는 얌체족을 막으려 자물쇠로 화장실을 단단히 채우는 현대인의 야박성이 페이드인되고 있음은 생각할수록 흥미롭다.뒷간은 예나 지금이나 엄중히 지켜야 하고 또 지킬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화장실은 1970년대 이후 근대화 바람을 타고 급속히 퇴장했다.빈 자리는 서양에서 탄생한 수세식 변기가 내장된 근사한 화장실로 메워졌다.수세식 변기는 엄밀히 말하면 혐오하는 배설물을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신속히 보내려는 서구인의 심리가 반영된 발명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구자들은 우리나라의 재래식 화장실이 완벽한 리사이클링을 본질로 하는 환경친화적 존재인데 비해 수세식 변기는 물을 오염시키고 궁극적으로는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존재라는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한다.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는 수세식 화장실.그것은 과연 발전인가,퇴보인가.인류를 희망으로 이끄는 지혜의 산물인가,아니면 멸망으로 이끄는 우매의 상징인가. 글 =손일락 청주대교수 호텔경영학과

<사진설명>

연극 '비언소'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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