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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산업 호황이라지만 중소IT는 빚 독촉에 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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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정보기술(IT)산업은 최근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 1분기 성장률은 25%로 비IT산업(3%)의 8배라는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런 수치가 '착시'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온다. 반도체.휴대전화.디스플레이 등 일부 대기업 품목은 잘 나가지만 대부분의 중소 IT제조업체들은 자금난이나 대기업의 힘에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이다.

◇빚독촉 시달리는 IT업체=지난 4일 정보통신부 회의실. 형태근 정보통신협력국장 주재로 간담회가 열렸다.

"우리들은 독자적인 기술역량을 갖췄다. 시장경쟁력도 확보했다. 그럼에도 은행들은 자금지원을 중단했다. 게다가 무차별적으로 대출금을 회수하고 있다." 참석한 김동연 텔슨전자 부회장, 양기곤 벨웨이브 사장, 김호영 기가텔레콤 사장, 이동훈 터보테크 부사장의 공통된 하소연이었다.

한 업체의 사례. 연간 매출액 3000억원대에 부채비율도 170%로 양호하다. 하지만 이 회사가 지난해부터 1년여 동안 은행에 갚은 대출금은 950억원. 이 회사 관계자는 "차라리 '빼앗겼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은행이 만기연장도 안해 주고 동시다발적으로 대출금을 회수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나마 우리 정도 되니까 버틴다. 다른 업체들은 더 어려울 것이다. 신규투자나 신규채용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수평협력 절실=지난달 28일 열린우리당 고위관계자들과의 간담회. 한국IT중소벤처기업연합회 고시연 회장은 "고생해서 신제품을 개발하면 대기업의 최저입찰제 때문에 수지를 맞출 수 없다. 그런 납품가로는 원가도 못 건지고, 악성 재고만 쌓여간다"고 업체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대형 이동통신사에 게임.음악 등 무선콘텐츠를 제공하는 업체들은 이런 일을 흔히 겪는다. 신규 단말기 출시나 기술규격 등에 관한 정보를 대형 이통사에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휴대전화에 동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B사의 K부사장. 그는 "최근 한 이통사의 신규 서비스 참여를 반강제적으로 포기했다"며 "매출이 수십억원대로 늘자 해당 이통사가 '너무 컸다'며 경쟁업체를 선정했기 때문"이라고 한탄했다. 대형 이통사들은 "우리도 막대한 돈을 들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시스템을 개발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금룡 이니시스 사장은 "분리입찰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정부물량 발주 때 전문 중소업체에 일정량을 배정해주자는 것이다. 대기업이 정부물량을 대부분 받아 이를 다시 하청기업에 나눠주는 지금의 '연결고리'를 차단해보자는 주장이다.

이처럼 중소업체들의 하소연이 거듭되자 정통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과의 간담회를 주재한 정통부 형 국장은 "조만간 정부와 중소 IT업체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겠다"며 "수시로 애로점을 수렴하고 지원방안을 강구하는 한편 금융권에 우수 업체의 실적전망 자료를 제공, 금융권의 불안심리를 가라앉히겠다"고 말했다.

정선구.염태정.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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